■ 경주이씨/익재이제현선생

역옹 이제현(櫟翁 李齊賢)과 상수리나무.

야촌(1) 2011. 5. 18. 21:54

■ 역옹 이제현(櫟翁 李齊賢)과 상수리나무

 

 이색(李穡) 지음

 

기유년에 과거에 장원한 문생(門生) 유백유(柳伯濡)가 그가 사는 집에 제명(題名)하기를, ‘저정(樗亭)'이라 하고 나에게 기문을 청해 왔다. 그 뜻을 물으니 백유는 말하기를, “가죽나무[樗]와 상수리나무[櫟]는 쓸데가 없는 목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천연의 수명을 다해 자란 것인데, 우리 동방의 학자들이 우러러보기를 태산과 북두성같이 하는 자가 바로 시중(侍中) 익재(益齋 이제현)이다. 익재가 스스로 역옹(櫟翁)이라 일컬었음은 아마도 반드시 연유한 바가 있을 것이다.

 

백유(白曘)가 선생의 문하에서 익재를 보기를 할아버지같이 하였다. 자사(子思: 공자의 손자)는 《중용(中庸)》을 저술함에 있어 자주 중니(仲尼: 공자의 자)를 일컬었으니 중니는 도가 나온 바이자 자신의 몸이 나온 바이다. 이제 백온이 성원(省垣)에 벼슬하면서 남달리 영달하여 길에서는 행인들이 길을 피해준다. 

 

들어와서는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나아가서는 벗들에게 친애하여, 그 이름을 드날려 오늘에 이른 것이 모두 익재 시중으로부터 파급된 나머지이다. 그러기 때문에 저(樗) 자를 따서 내 정자를 이름하고 보니 지극히 참람하여 그 죄를 피할 바를 알지 못하겠다. 

 

그러나 존경하고 사모함이 깊은 까닭에 친근히 함을 간절히 하게 되고, 친근히 함을 간절히 했기 때문에 비의(比擬)하기를 더욱 가깝게 하여 사양할 줄을 모르게 된 것이니, 원컨대 선생은 그 의의를 부연해 주기 바란다.” 하는 것이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젊었을 적에 《시경》을 읽지 않아서 초목의 이름을 몰랐더니, 익재의 말에 ‘상수리나무 역(櫟) 자의 글자됨이 나무 목(木)에 즐거울 락(樂) 자를 붙인 것은 그 목재로써 쓸데없음을 즐겁게 생각한다는 뜻인 것이다.'하였으니, 이는 아마도 겸사(謙詞)인 듯하다.

 

이제 자네는 말하기를, ‘쓸데가 없는 목재는 무용의 물건일 뿐이다. ’하니, 천하에 물건이 쓸 수 없는 것이 없거니와 나무의 소용이란 더욱 많은 것이다. 궁실(宮室)을 지어 거처하는 것과, 기명(器皿)을 만들어 쓰는 것 등은, 조석으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창ㆍ방패 등의 군비와 수레와 가마의 승용구(乘用具) 등은 급할 때에 없을 수 없는 물건들이니 그에 쓰이는 목재는 모두 가히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이제 백유가 이런 것들을 취하지 않고 오직 쓰지 못하는 가죽나무를 구하니, 이는 참으로 무용한 것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익재가 스스로 ‘역(櫟)’으로써 호를 하고 평생을 조정에서 벼슬하여, 5대의 왕조를 섬기면서 도덕과 문장이 천하에 떨쳤으니, 백유는 가히 사모할 바를 안다고 하겠다. 

 

익재같은 이는 대대로 나는 인물이 아니다. 사람이란 진실로 자신의 역량을 알지 않을 수 없는 것이나, ‘순(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말하였으니, 뜻있는 자는 윗사람에게 선택하여 본받을 것이요, 자포자기할 것은 아니니 백유는 더욱 힘쓸지어다.

 

도덕과 문장을 하늘이 어찌 사람에게 주기를 아끼겠는가. 그러기에 이르기를, 하늘이 명하여 준 것을 성(性)이라 이르고, 이 성의 자연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였으니, 백유는 성인의 명(明)과 성(誠)의 가르침에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만물의 체(體)가 되어서 버릴 수 없는 곳에 스스로 노정(露呈)되어 엄폐할 수 없는 것이 있을 것이니, 어찌 유용(有用)을 운운할 것이 있겠는가.

 

[자료 : 동문선 제75권]

 

 

상수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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