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조유적. 유물

천휴당 이몽규 선생 묘(天休堂李夢奎墓)

야촌(1) 2011. 4. 11. 00:58

 

■ 24世 이몽규(李夢奎) /상서공파

 

◇생졸년 : 1510년(중종 5)∼1563년(명종 18).

◇생원진사시 : 중종(中宗) 35년 (1540) 경자(庚子) 식년시(式年試) 3등(三等) 4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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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사인(士人=벼슬을 하지 않은 선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창서(昌瑞), 호(號)는 천휴당(天休堂)· 청천당(聽天堂)이다. 조부는 판관(判官-從五品)을 지냈으며 이조참판(吏曹參判-從二品)에 추증된 이성무(李成茂)이다.

 

아버지는 주부(注簿)로 이조판서(吏曹判書-正二品)에 추증된 통훈대부(通訓大夫-正三品) 이인신(李仁臣)이다. 어머니는 광주반씨(光州潘氏)로 절도사(節度使) 반희(潘熙)의 딸이다.

 

종실(宗室=임금의 종친)이었던 이모부 흥녕부정(興寧副正) 이린(李磷)이 아들이 없어,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그의 양자로 들어갔다. 1540년(중종 35) 경자식년사마시(庚子式年司馬試)에 생원 3등으로 합격하여 성균관(成均館)에 들어갔으나, 얼마 있지 않아 나왔다.

 

1547년(명종 2) 처가의 별장이 있는 보령(保寧)으로 이주하였다. 그곳에 서실을 짓고 천휴(天休)라 명한 후에 전원에 묻혀 오직 독서와 시 짓기에 전념하였다. 이단을 배척하여 평소 풍수지리사상과 불교 및 무당을 강하게 비판하였다고 한다.

 

어려서 눌재(訥齋) 박증영(朴增榮)의 기대를 샀으며, 성장하여서는 한 마을의 사재(思齋) 김정국(金正國)과 교류하였다. 생부와 양부 모두에게 지극한 효성을 보여 사람들의 큰 인망을 얻었다고 전한다. 1563년(명종 18) 병을 얻어 그 해 6월 5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