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世 이정보(李廷輔)의 자(字) 맹주(孟周)에 대한 설
국당공 이천(菊堂公 李蒨)의 장증손(長曾孫)
계림(雞林=慶州) 이씨(李氏) 가운데 오재(五宰=시중·평장사·참지정사·정당문학·지문하성사)의 지위에 오르고 월성군(月城君 이천(李蒨)에 봉해진 분이 있는데, 정보(廷俌)는 바로 그의 장 증손(長曾孫)이다.
그가 현재 대신(臺臣)으로서 중한 명망을 지니고 있는데, 한산자(韓山子)에게 찾아와서 자(字)를 청하였다. 그때 한산자가 바야흐로 《운회(韻會)》를 검토하고 있다가 보(俌)를 찾아보니, 그 밑에 ‘보(輔)’라는 주(註)가 붙어 있기에, ‘주(周)나라 왕실의 보필’ 이라는 말을 취해서 그의 자를 맹주(孟周)라고 지어 주었다.
국가에서 인재를 쓰는 것은 수레에 보(輔 덧방나무)를 설치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그래서 시에서도「그대의 덧방나무를 버리지 말고서, 그대의 바퀴살에 덧붙여 튼튼하게 하라.[無棄爾輔 員于爾輻]」고 한 것이다.
또 어려운 시국을 구제하는 것은 수레가 무거운 짐을 싣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그래서 《시경》에서도「마침내 험한 길을 넘어가는 것이, 생각지도 못했듯이 수월하리라.[終踰絶險 曾是不意]」라고 한 것이다.
인재를 써서 어려운 시국을 구제한 이 점이야말로, 주나라의 정치를 따라갈 수 없는 이유라고 하겠다. 대체로 주(周)라는 나라 이름 속에는 천하를 두루 소유했다는 뜻이 들어 있다.
그리고 주남(周南)으로 말하면, 주공(周公)의 교화가 남쪽에까지 미친 것을 노래한 것으로서, 국풍(國風) 중에서도 정풍(正風)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터이다. 이처럼 주남의 교화가 아름다워서 백성들의 마음이 그곳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시경》에서도「주나라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만백성의 소망이로다.[行歸于周 萬民所望]」라고 한 것이었다.
사군자(士君子)가 어려서 배운 것을 장성하여 행하는 동안, 제가(齊家)에서 시작하여 평천하(平天下)로 마칠 때까지, 임금을 인도하여 백성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고 잘못된 풍속을 바로잡아 바꾸려고 할 때에는, 으레 그 사람을 요순(堯舜)처럼 만들고 그 시대를 당우(唐虞)처럼 만들겠다고 다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夏)를 말하고 은(殷)을 말하다가 주(周)에 와서 그치는 것은, 주나라 이후로는 천하에 훌륭한 정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뜻이 있는 선비가 발을 돋우고서 바라다볼 대상은 주나라가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주공(周公)과 소공(召公)과 필공(畢公)이 주나라 왕실을 보좌하여 바르게 인도한 내용이 《시경》과 《서경》에 기록되어 찬연히 우리 눈을 비추고 있다. 따라서 맹주(孟周)로서는 또한 여기에 마음을 두어야 할 것이니, 이렇게 주나라에 마음을 둔 뒤에야 오늘날 조정의 보상(輔相 재상(宰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하락(河洛)을 보게 되면 우왕(禹王)을 생각하게 마련이고, 청묘(淸廟 종묘(宗廟))에 들어가게 되면 문왕(文王)을 생각하게 마련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맹주가 자신의 명호(名號)를 뒤돌아보고 그 뜻을 생각하노라면, 주나라에 마음을 두어야겠다는 그 마음이 또한 어떠하다 하겠는가. 그런데 주나라에 마음을 두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것은 바로 관저(關雎)와 인지(麟趾)에 마음을 두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관저와 인지로 말하면 문왕의 위치에 있는 자가 바랄 일이지 맹주가 사모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훌륭한 여러 선비들이여, 문왕이 이 때문에 편안하시도다.[濟濟多士 文王以寧]」라는 시도 있고 보면, 문왕이 아름다운 교화를 일으켜서 가정으로부터 온 누리에 미치게 할 적에, 어찌 여러 선비들의 도움이 적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선비라는 존재가 비록 미미하다 하더라도 으레 천하의 일을 가지고 자임하는 것은, 장차 천자를 보좌하여 그 뜻을 행함으로써 자신이 배운 것을 베풀어 보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니, 맹주는 결코 이 점을 의혹하지 말지어다.
그래서 중니(仲尼)도 일찍이「나를 만약에 써 주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 나라를 동방의 주나라로 만들 자신이 있다.」라고 했던 것인데, 이렇게 본다면 주나라의 도를 동방에 일으킬 때가 바로 오늘날에 있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맹주는 결코 의혹을 갖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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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01]운회(韻會) : 원(元)나라 웅충(熊忠)이 30권으로 지은 《고금운회거요(古今韻會擧要)》라는 운서(韻書)
를 말하는데, 줄여서 《고금운회》 혹은 《운회》라고 부른다.
[주02]주(周)나라 왕실의 보필 : 《시경》 노송(魯頌) 비궁(閟宮)에 “그대가 사는 곳을 크게 발전시켜, 주나라 왕실
의 보필이 될지어다.[大啓爾宇 爲周室輔]”라는 말이 나온다.
[주03]그대의 …… 하라 : 《시경》 소아(小雅) 정월(正月)에 나온다. 바로 다음에 인용된 시도 마찬가지이다.
[주04]주나라로 …… 소망이로다 : 《시경》 소아(小雅) 도인사(都人士)에 나온다.
[주05]하락(河洛) :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준말인데, 우왕(禹王)이 낙서를 토대로 해서 《상서(尙書)》 홍범
(洪範)의 구주(九疇)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06]청묘(淸廟) : 《시경》 주송(周頌)의 편명이기도 한데, 문왕을 제사 지낼 때 쓰는 악장(樂章)이기 때문에 이
렇게 말한 것이다.
[주07]관저(關雎)와 인지(麟趾) : 관저는 《시경》 주남(周南)의 맨 처음에 나오는 편명으로, 문왕의 후비(后妃)의
덕을 노래하고 있고, 인지는 ‘인지지(麟之趾)’의 준말로 주남의 맨 끝에 나오는데, 문왕의 자손이 번창할 것을
노래하고 있다.
[주08]훌륭한 …… 편안하시도다 : 《시경》 대아(大雅) 문왕(文王)에 나오는 말이다.
[주09]나를 …… 있다 : 《논어》 양화(陽貨)에 나온다.
자료문헌 : 목은집(牧隱集) >목은문고(牧隱文藁) 제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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