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대유(李大㕀)

야촌(1) 2010. 7. 13. 02:26

■ 27世 이대유(李大㕀)

 

   [세계] 익재공파 24世 재사당(再思堂) 원(黿 )의 증손

   [생원진사시] 선조(宣祖) 3년 (1570) 경오(庚午) 식년시(式年試) 3등(三等) 17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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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0년(중종 35)∼1609년(광해군 1),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인(景引), 호는 활계(活溪). 아버지는 생원 종윤(倧胤)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창원정씨(昌原丁氏)로 담지(燂之)의 딸이다.


1570년(선조 3) 생원시에 합격하고 성혼(成渾)에 의하여 사옹원참봉(司饔院參奉)에 천거되었으나, 얼마 뒤 어머니의 병간을 위하여 사직하였다. 1595년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취임하지 못하였고 이듬해 사포서 별좌(司圃署別坐), 1600년 사근도찰방(沙斤道察訪)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1605년 사도시 주부에 제수되고 이어 형조좌랑(刑曹佐郞)에 승진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대학》을 즐겨 읽고 연구하였으며, 인(仁)에 뜻을 두고 경(敬)을 먼저 실행하기에 힘썼다.

남원의 영천서원(寧川書院)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활계유고(活溪遺稿》 2권 1책(冊)이 있다.

 

참고문헌>活溪先生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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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계선생 유고(活溪先生遺稿)

 

  [저자] 李大㕀(朝鮮) 著

  [간행년대] 純祖22年(1822)

  [책권수] 2卷 1冊

  [판본] 希顯堂鐵字

 [크기] 29.9 × 20.8cm

 

[내용]

활계 이대유[活溪 李大㕀 : 1540년(중종 35)∼1609년(광해군 1)]의 시문(詩文)을 모아 현손 장욱(長郁)이 1657년(효종 8)에 2권 1책 목활자본으로 편집 간행하였고, 그 뒤 1822년(純祖 22)에 그의 후손 집형(集馨)이 누락된 글 약간 및 그 아들 東林의 詩 몇 수를 더하여 다시 간행한 것이다.

 

이대유(李大㕀)는 이상길 소찬 행장(李尙吉 所 撰 行狀)에 따르면 일찌기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한 이래 다시는 과업(科業)에 뜻이 없었으나 은덕(隱德)으로 추천되어 참봉(參奉) 등 말직(末職) 몇 가지를 역임 했던 사인(士人)이라 한다.

 

그러나 그의 평생 관심은 어디까지나 학문(學問)과 시문(詩文)에 있었고, 그리하여 남들이 혹 출세하기를 권하면 그는 문득 소자시(邵子詩) 가운데의 직재흉중빈역락굴어인하귀해위(直在胸中貧亦樂 屈於人下貴奚爲)를 읊으며 서책(書冊)으로 일생을 마쳤다 한다.

 

동시에 그는 당시 湖南夫子의 稱을 들었다고 하는데, 序文에 따르면 그의 글 은 이른바 枝葉만을 粉澤하는 世人과 달리 "質慤平正 溫粹和雅"함이 특색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양적으로 보면 父子의 글이 모두 얼마씩 되지 않는데 우선 活溪 의 글을 보면 앞에 李頣根의 序가 있고 五言絶句(玉山龍頭敬次晩軒先生韻 등 9수), 七 言絶句(次晩軒三月十八日夜吟 등 30수), 五言律詩(立春日呈晩軒 등 26수), 七言律詩( 奉酬金景言韻 등 42수), 五言古詩(送四川李上舍還鄕 등 2수), 七言古詩(次李聞遠新居 諸作 등 3수), 祭文(祭金主簿文 등 3편), 行蹟(都事丁先生行蹟 등 2편), 序(高塘德業 契序 1편), 書(答丁伯高書 1편). 附錄으로 行狀(星山 李尙吉 撰), 祭文(李景輿 등 5人 의 글), 挽詞(崔薀 등 2人 것), 寧川書院請額疏, 同賜額時致祭文, 墓碣銘(張維 撰) 등 이다.

 

이 가운데 특히 行狀은 모두 10장에 달하는 長文이다. 東林遺稿는 먼저 詩 <過 洛伽寺>등 32수와 寧川書院上樑文 1편이 있다. 그는 本文 註에 따르면 諱 以恂, 字 熙之며, 科業을 닦지 않고 그의 父 大㽕의 정자인 止隅亭에 집을 짓고 琴書로 自娛하 여 鳳仙道骨의 稱을 듣던 사람이라 한다.

 

그리고 일찌기 沙溪 金長生에게 禮를 물은 바 있어 그로부터 <南州 高士>의 稱을 들었다고 한다.

끝에 宋穉圭의 活溪集跋이 있고 末尾에는 始祖로부터 38世에 이르는 慶州 李氏世系가 수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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