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극복(李克福)

야촌(1) 2010. 7. 11. 02:02

■ 28世 이극복(李克福)

 

   [세   계] 익재공후 판윤공파

   [생졸년] 1548년(명종 3)∼1596년(선조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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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의병장.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유사(有司), 호는 모석(慕石) 또는 모의당(慕義堂). 가선대부(嘉善大夫)윤(倫)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조호익(曺好益)의 문인이다. 박학하여 섭렵하지 않은 글이 없었으나, 특히 이수(理數)와 서상(筮象)에 관한 책을 탐구하였다.

 

일찍이 《육도 六韜》와 《삼략 三略》 등의 명서를 공부하여 지략을 넓히고 궁마술(弓馬術)을 익혀 국란에 대비하였다.
1586년 산사에서 글을 읽다가 혜성(彗星)이 뻗치는 것을 보고 병란(兵亂)을 예견하고, 그에 대비하기 위하여 양곡 300여섬을 준비하여 북산 굴 속에 저장해두고, 1592년 정월 이경한(李景漢)·이백인(李伯仁) 등과 안압지(雁鴨池)에 모여 국란이 있으면 의병을 일으킬 것을 약속하였다.


4월에 왜병이 침입하자 모의당에 모여 의병을 일으키고, 준비하여둔 양곡을 군량미로 사용하였다. 총병(摠兵)이 되어 안강·월성 등지에서 왜적을 격파하고 단주성(檀州城)에서 대승을 거두었으며, 화왕산성(火旺山城)의 곽재우(郭再祐)와 합세하여 적을 무찔렀다.


유성룡(柳成龍)의 추천으로 사복(司僕)이 된 뒤, 1594년 형제가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첨정(訓鍊僉正)이 되었다.
이듬해 이여송(李如松)과 합군하여 남한산성에서 적을 대파하였다. 1596년 팔공산전투에서 분전하다가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저서로는 《모석유고》 1책이 있다.

 

[참고자료]

◇宣祖實錄   ◇慕石遺稿

 

모석유고(慕石遺稿)/필자 소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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