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규(柳氵+奎)
[생졸년] 1730년(영조 6) ~1806년(순조 6)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수부(秀夫), 호는 임여재(臨汝齋)이다.
그는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6대손으로, 증조는 류만화(柳萬河), 아버지 류성오(柳聖五)와 어머니 안동 권씨(安東權氏) 정로(鼎老)의 딸 사이에서 안동의 하회에서 출생했다.
그는 일찍이 학문에 전심하여 경사(經史)와 산률(算律), 음양(陰陽), 성력(星曆)에 정통하였다.
안민수(安敏修), 권명우(權明佑), 김필형(金弼衡), 이상진(李象辰)등과 도의교(道義交)를 맺었다.
1791년(정조 15) 좌의정 채제공(蔡濟恭)의 천거로 의금부도사에 제수되었고, 1792년 영남 유림과 연명으로 사도세자가 죄가 없음을 아뢰는 만인소(萬人疏)를 올렸다.
이어 사재감봉사와 종부시직장·사옹원주부·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하였고, 경산현령으로 재직할 때는 풍속 교화와 빈민 구제에 힘썼으며, 1800년(순조 즉위년) 돈령부도정에 제수되었다. 저서로는「임여재집(臨汝齋集)」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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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여재 류규 선생 문집(臨汝齋 柳규 선생文集). 9권 5책(부록 포함). 목판본.
문집의 서문은 이의발(李羲發)이 썼고 행장(行狀)은 삼종손(三從孫)인 류태좌(柳台佐)가 썼으며, 철종(哲宗)연간에 손자 류학조(柳鶴祚)가 편집·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卷1에는 오언시· 칠언시· 만시 등 詩 144首가 수록되어 있고, 사림을 대신해서 지은「屛山書院請額疏」가 있는데,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과 그의 아들인 류진(柳袗)을 함께 배향하고 있는 병산서원(屛山書院)이 학문적으로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을 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독서강도(讀書講道)하는 장소로 적격인 이곳이 성은(聖恩)으로 사액을 받아서 선현(先賢)들의 학문과 뜻을 이어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卷2와 卷3은 書이며, 卷4는 雜著·序·記·識跋·箴·贊·上樑文, 卷5는 祝文과 祭文, 卷6은 誄辭·哀辭·碑碣·墓表, 卷7은 墓誌와 行狀, 卷8은 行狀, 卷9는 行狀·碣銘·墓誌·輓詞·祭文 등 附錄이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이 일상생활과 관련된 실용적이고 의례적인 작품이지만, 이 가운데 특히 「答李澤仲(春漙)」과 「答李德而(萬運)籌學啓蒙問目」 등과 같은 書簡에는 곱셈, 나눗셈 등 수학의 원리와 응용, 밭의 면적을 계산하는 법, 달력의 원리와 달력 작성법 등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어서 당대의 생활상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 외에도 雜著 중 「筵說」은 저자가 正祖의 부름을 받아 면담한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柳成龍의 6대손이었던 그의 家系와 주거상황· 나이· 관직 등에 대하여 대답한 것이며, 「通諭屛院儒生文」은 屛山書院의 선생과 학생들에게 보낸 勸學文이다. (鄭義雨)
류규선생 간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