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개립(李介立)

야촌(1) 2010. 6. 27. 15:28

■ 26世 이개립(李介立)

 

   [세계] 국당공 후 제정공파 

   [자(字)] 대중(大中)

   [호(號)] 성오당(省吾堂)/역봉(櫟峰)

   [생몰년] 1544 (중종 39)~1625 (인조 3)

   [시대] 조선 중기

   [본관] 경주(慶州) 국당공후 재정겅파.

   [활동] 의병 / 의병장

   [과거]

  [생원진사시] 선조(宣祖) 원년 (1567) 정묘(丁卯)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3등(三等) 31위 

   [묘 소재지] 경북 영주시 장수면 갈산1리

-------------------------------------------------------------------------------------------------------------------------------------

1546년(명종 1)∼1625년(인조 3). 조선 중기의 의병장.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대중(大中), 호는 성오당(省吾堂)· 역봉(櫟峰). 어모장군(禦侮將軍) 해()의 아들이다.


김성일(金誠一)의 문인이다. 진사인 그는 1586년(선조 19)에 효행으로 천거되어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어버이를 봉양하기 위하여 사퇴하고, 1591년 장현광(張顯光)과 함께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참봉이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였는데 부족한 식량과 군량의 조달에 공이 컸다. 이러한 공에 의하여 수령을 감당할 인재 30명이 천거된 중에 그도 포함되어 1594년에 자여찰방(自如察訪)에 임명되고, 다음해에 낭천현감(狼川縣監)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596년 산은현감(山隱縣監)에 임명되고, 다음해 정유재란 때 체찰사종사관(體察使從事官)황여일(黃汝一)의 천거로 향병대장(鄕兵大將)이 되었으나 병마절도사김경서(金景瑞)가 의병을 자기 휘하에 속하게 하지 않은 데에 사감을 품자 고향에 돌아가 오로지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조경(趙絅)이 묘갈명을 지었다.

 

저서로 1776년 후손들이 선생의 유집을 모아 목판본으로 성오당집(省吾堂集)을 3권 2책으로 편집 간행하였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人物考(宋正炫)   ◇省吾堂先生文集

 

○ 경북 영주시 장수면 갈산리
이 마을은 경주 이씨 성오당(省吾堂) 이계립 선생의 후예(後裔)가 하갈(下葛)에서 살다가 수해를 당하고 이곳으로 이주하여 하갈보다 위쪽에 위치한 곳이라 해서 윗 갈 미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효자 이개립의 정자가 있는 마을로 영주시의 금년도 효 시범 마을이다.

갈미 마을은 65세 이상 노인 인구수가 많고 3세대 이상 가구가 26%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장수마을로 지난해 사망한 경상북도 최고령자 조덕자 할머니가 거주하던 마을이다.

 

'■ 경주이씨 > 경주이씨 명인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격(李格)  (0) 2010.06.27
이건영(李健榮)  (0) 2010.06.27
이갑성(李甲成)  (0) 2010.06.27
이담(李擔)  (0) 2010.06.27
이래(李來)  (0) 2010.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