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래(李來)

야촌(1) 2010. 6. 27. 15:01

■ 20世 이래(李來)

 

   [세계] 경주이씨 석탄공파(石灘公派)

   [생졸년] 1362(공민왕 11)∼1416(태종 16).

   [고려문과] 우왕(禑王) 9년 (1383) 계해(癸亥) 우왕 9년 계해방(禑王 九年 癸亥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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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내(徠). 자는 낙보(樂甫). 우정언(右正言-從六品) 존오(存吾)의 아들이며, 우현보(禹玄寶)의 문인이다.

 

1371년(공민왕 20) 아버지 존오(存吾)가 신돈(辛旽)의 처벌을 주장하다가 유배되어 울화병으로 죽고, 이어 신돈이 처형되자, 10세의 어린 나이로 전객녹사(典客錄事)에 특임되었다.

 

1383년(우왕 9) 문과에 급제하고, 공양왕 때에 우사의대부(右司議大夫-正四品)에 올랐다.
1392년(공양왕 4) 정몽주(鄭夢周)가 살해되자, 그 일당으로 몰려 계림(鷄林)에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나서 공주에 은거하였다.

 

1399년(정종 1)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正四品)로 등용되고, 이듬해인 1400년 방간(芳幹)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추충좌명공신(推忠佐命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곧 좌군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정2품)가 되었고, 계림군(鷄林君)으로 봉작되었다.

 

1402년(태종 2) 첨서승추부사(僉書承樞府事)가 되었다가 그해 대사간을 거쳐 공조판서(工曹判書-正二品)에 승진되었다. 1404년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곧 대사헌(大司憲-從二品)이 되었다.


이듬해에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正二品)이 되었고, 1407년 경연관(經筵官)을 거쳐 세자의 스승인 좌빈객(左賓客-正二品)을 지냈으며, 1408년에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겸 판경승부사((判敬承府事)에 이르렀다. 태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諡號)는 경절(景節)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定宗實錄 ◇太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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