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이상설보도자료

러, 강가에 세우진 이상설 선생 유허비

야촌(1) 2009. 10. 23. 00:42

 
 

 

 

러, 강가에 세우진 이상설 선생 유허비

(우수리스크=연합뉴스) 강창구 특파원 = 헤이그 밀사사건의 한 명인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가 러시아 우수리스크 수이푼 강가에 외롭게 모셔져 있다.

이 선생은 1907년 고종의 밀지(密旨)를 받아 이준(李儁), 이위종(李瑋鍾) 선생과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참석하려다 일본에 의해 거부당했고 이때 이준 열사는 자결을 단행,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무효를 상소하고 자결을 기도했다 실패하자 간도(間島) 룽징춘(龍井 村)으로 이주해 서전서숙(瑞甸書塾)을 설립, 교포 자녀의 교육과 항일민족정신을 고취했다.

이후 헤이그 밀사사건을 계기로 궐석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되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으로 이주해 권업회를 조직하고 권업신문, 해조신문 등을 발행하는 등 민족계몽운동에 앞장섰다.

1917년 48세의 나이로 작고한 이 선생은 임종을 앞두고 "광복을 못 보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몸과 유품을 남김없이 불태우고 그 재를 바다에 버리고 제사도 지내지 마라"고 유언했고 그 유언에 따라 유골이 수이푼강에 뿌려졌다.

이 선생 유허비는 2001년 10월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이 설치했으며 높이 3.9m, 너비 5.7m 크기의 화강암에 이 선생의 업적을 소개하는 글이 쓰여있다.

수원대 박환 교수는 "이 선생의 서릿발 같은 유언에 따라 당시 시신은 화장돼 수이푼 강에 뿌려졌고 뒤늦게 광복회 등이 나서 이 선생의 유골이 뿌려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에 유허비를 세웠다"고 말했다.

kcg3316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