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고궁,정려,서원

개성 숭양서원(崧陽書院)

야촌(1) 2008. 4. 14. 20:41

↑숭양서원 삼문[정문] 앞에서(2008년 2월 13일 수요일)

 

↑좌측은 필자 내외이고 우측은 필자와 제종형제간인 재향. 재곤 형제분이다.

 

●개성 숭양서원(崧陽書院)

 

황해북도 개성시 선죽동에 있는 숭양서원은 고려의 대관료였고 유능한 군사가, 외교가였던 포은 정몽주(1337-1392)가 살던 집자리에 세운 서원이다. 고려 말에 처음 세우고 이조 때인 1573년 고쳐 지었다. 

 

정몽주의 시호를 붙여 <문충당>이라고 불러오다가 1575년에 숭양서원이라 사액, 이때 부터 숭양서원으로 불리게 되었다. 숭양서원은 자남산을 등지고 그 동남쪽 경사지에 대칭적으로 규모 있게 배치되어 있다.

 

장방형으로 둘러막은 담의 앞에 난 삼문으로 들어서면 마당 좌우에 동재와 서재가 마주 서 있고 3개의 계단으로 통은 축대 위에 오르면 강당이 있다. 또 그 뒤에 있는 3개의 급한 계단으로 올라 서원의 앞뒤구역을 가로막은 담에 난 삼문을 지나면 사당에 이른다.숭양서원은 임진왜란 이전의 목조건물로서 서원의 전형적인 배치형식과 건축구조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귀중한 유적이다.

 

숭양서원 앞 50m 우측에 고려말 익재 이제현선생의 생거지(生居地)가 북측의 유적보호 구역으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숭양서원비(崧陽書院碑)

 

황해북도 개성시 선죽동에 있는 비. 고려충신 정몽주의 옛 집터에 세운 숭양서원에 대하여 적은 비(왼쪽에 있는 비)이다.

 

 1811년에 당시의 이름난 관료 남공철이 유수로 부임된 후 이 비문을 지었는데 비문에는 정몽주의 업적을 찬양하고 정몽주와 함께 배향한 5명의 유학자들의 공적과 그들을 배향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명문에 의하면 숭양서원은 1573년에 세웠으며 비는 1811년에 세웠다.

 

↑숭양서원 입구(보이는 관광객들은 우리 일행이다.)

 

↑옛 사람들의 숭모비

 

↑북측 안내원이 숭양서원을 설명하고 있다.

 

숭양서원은 개성시 선죽동 자남산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지방사립교육기관의 하나로, 고려시대의

충절가 정몽주를 기리기 위해 1573년 그가 살던 집에 서원을 세운것이다. 처음에는 문총당이라 하

였는데, 1575년부터 숭양서원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숭양서원에 모신 위패들의 모습

 

숭양서원에 있는 위패는 1573년(선조 6년) 숭양서원의 옛이름이었던 문충당(文忠堂) 창건 시 정몽

주(鄭夢周)·서경덕(徐敬德)의 위패를 모셨고, 1575년에 '숭양'이란 사액을 받아 숭양서원으로 승

격한 뒤, 1668년(현종 9년)에 김상헌(金尙憲)을, 1681년(숙종 7년)에 김육(金堉)·조익(趙翼)을, 

1784년(정조 8년)에 우현보(禹玄寶)를 추가 배향했다.

 

 

위쪽으로 올라오면 단촐한 건물이 하나 있는데, 내부에는 정몽주의 초상화와 위패들을 모셔놓고

    있다.<위 사진의 사당에 이른다.>

 

숭양서원에 모신 정몽주 선생의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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