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문인 임제(林悌)
조선전기의 문인으로1549(명종 4)-1587(선조 20)시대의 사람으로 미수 허목(眉叟 許穆)의 외조부(外祖父)이기도 하다. 본관은나주(羅州)로, 자는 자순(子順), 호는 백호(白湖).풍강(楓江).벽산(碧山).소치(嘯癡).겸재(謙齋) 이고 아버지는 오도절도사 훈련원 판관을 지낸 진(晉)이다. 큰아버지 풍암(楓岩)이 친아들처럼 사랑하며 돌보았다.
초년에는 늦도록 술과 창루(娼樓)를 탐하며 지내다가 2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학문에 뜻을 두었다.
제주목사였던 아버지를만나기 위해 풍랑이 거친 바다를 조각배로 건너가고, 올 때는 배가 가벼우면 파선된다고 배 가운데에 돌을 가득 싣고 왔다고 한다.
1577년(선조 9) 문과에 급제했다. 그러나 당시 당쟁의 와중에 휘말리기를 꺼려한 탓에 변변한 벼슬자리를 얻지 못하고 예조정랑 겸 사국지제교(史局知製敎)에 이른 것이 고작이었다. 스승인 성운(成運)이 죽자 세상과 인연을 끊고 벼슬을 멀리한 채산 야를 방랑하며 혹은 술에 젖고 음풍영월(吟風詠月)로 삶의 보람을 삼았다.
전국을 누비며 방랑했는데 남으로 탐라. 광한루에서 북으로 의주 용만. 부벽루에 이르렀다.
그의 방랑벽과 호방한 기질로 인해 당대인들은 모두 그를 법도(法度) 외의 인물로 보았다.
그러나 당시의 학자. 문인인 이이. 허균. 양사언 등은 그의 기기(奇氣)와 문재(文才)를 알아주었다.
성운은 형이 을사사화로 비명에 죽자 그 길로 속리산에 은거한 인물로 임제는 정신적으로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죽을 때는 자식들에게 "사해제국(四海諸國)이다 황제라 일컫는데 우리만이 그럴 수 없다.
이런 미천한 나라에 태어나 어찌 죽음을 애석해 하겠느냐"며 곡을 하지 말라고 유언했다.
기풍이 호방하고 재기가 넘치는 문인으로 평가받으면서 전국을 누비다보니 여러 일화들이 전한다.
특히 기생이나 여인과의 일화가 많은데, 당시 평양에서 제일가는 기생 일지매(一枝梅)가 전국을 다녀도 마음에 드는 이가 없던 차에 마침 밤에 어물상으로 변장하고 정원에 들어온 그의 화답시(和答詩)에 감동되어 인연을 맺은 일, 영남 어느 지방에서 화전놀이 나온 부인들에게 육담(肉談)적인 시를 지어주어 음식을 제공받고 종일 더불어 논 일, 박팽년 사당에 짚신을 신고가 알현한 일 등은 유명하다.
황진이의 무덤을 지나며 읊은 "청초 우거진 골에……"로 시작되는 시조를 포함해 기생 한우(寒雨)와 화답하는 것 등, 사랑과 풍류를 다룬 시조 4수를 남겼다. 문집으로는 <백호집 白湖集>이 있다.
700여 수가 넘는 한시 중 전국을 누비며 방랑의 서정을 담은 서정시가 제일 많다. 절과 승려에 관한 시, 기생과의 사랑을 읊은 시가 많은 것도 특색이다. 꿈의 세계를 통해 세조의 왕위찬탈이란 정치권력의 모순을 풍자한 <원생몽유록(元生夢游錄)>, 인간의 심성을 의인화한 <수성지(愁城誌)>, 그리고 식물세계를 통해 인간 역사를 풍자한 <화사 花史>등 한문소설도 남겼다.
백호집은 임제(林悌)의 시문집으로, 4권 2책. 목판본. 이항복이 선정(選定), 편차(編次)한 것을 1621년(광해군 13) 사촌동생인 서()가 간행했다. 1759년(영조 35) 서의 현손 상원(象元)이 판목의 결락분(缺落分)을 채워 중간했다.
한말에 활판으로 3간되었으며, 1958년 12대손 종필(種弼) 등이 석판으로 4간했다.
권1에 5언절구 65수, 5언 근체시 127수, 5언 장률(五言長律) 4수, 5언 고시 33수, 권2에 7언 절구 232수, 권3에 7언 절구 58수, 7언근체시 179수, 7언 장률 6수, 7언 고시 165수, 권4에 부(賦) 3편, 전(箋) 1편, 문(文) 3편, 지(志) 1편이 실려 있다.
중간본에서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이 부록으로 첨가되었고, 4간본에서 <남명소승(南溟小乘)>.<화사(花史)>가 별책부록으로, <청등론사(靑燈論史)>.<부벽루상영록(浮碧樓觴詠錄_>이 별책습유(別冊拾遺)로 첨가되었다. 규장각 등에 소장되 있다.
[지은이] : 임제(林悌)
제목 : 청초 우거진 골에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느냐 누웠느냐
홍안을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느니
잔 잡아 권할 리 없으니 그를 슬프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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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사(平安都事=중앙 및 지방관청의 從五品 事務官)로 부임해 가던 임제(林悌)가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가 읊은 노래이다.
푸른 풀이 무성한 무덤에 누워있는 백골은 홍안과 색체를 포함해 대비를 이룬다.
살아생전에 아리따웠던 그녀의 모습에 대한 그리움과 이제는 백골이 되어,
누워있는 현실 앞에서 느끼는 허무감이 짙게 스며있다.
옮긴이: 김동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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