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英雨 6

은송처사 이공 영우 행장

■ 은송처사 이공 행장(隱松處士李公行狀) 공(公)의 휘(諱)는 영우(英雨)요. 자는 문칙(文則). 성(姓)은 이씨이니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상조(上祖) 휘(諱) 알평(謁平)은 신라(新羅) 좌명공신(佐命功臣) 이었다. 고려조(高麗朝)에 이르러 휘 제현(齊賢)이 계시니 문장(文章)과 덕업(德業)으로 세상에 드러나 세상 사람들이 익재(益齋)선생이라 칭송하였다. 당시 종사(宗師-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스승)가 되어 여러 차례 시랑(侍郞-正四品)에 배수(拜授-除授) 되었으며,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에 봉해졌고, 시호(諡號)는 문충(文忠)이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휘 원(黿)이 계시니 예조좌랑(禮曹佐郞-正六品)이었고, 호(號)는 재사당(再思堂)이다. 김 한원당(寒暄堂)과 함께 점필재(佔畢齊)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은송정기(隱松亭記)

■ 은송정기(隱松亭記) 역문(譯文) 저번에 고령(高靈)의 이태희(李台熙)라 하는 분이 한권의 가승(家乘)을 가지고, 내집문에 이르러 뵙기를 청(請)하고 말하기를, 이는 우리집의 파보(派譜)이고, 하나는 곧 우리 11대조가 되는 남포공(藍浦公)의 순절(殉節) 한때의 실상(實狀)을 기록(記錄)한 것이다. 남포공(藍浦公)은 벽오공(碧梧公)의 第五子로서 일찍이 벼슬하여 외직(外職)으로 나가서 남포현(藍浦縣 : 오늘날 충남 보령시)을 다스리다가 丙子年[1636(인조 14)]에 북쪽 오랑케가 일으킨 난리(亂離)를 만났다. 나라에는 굶어죽는 사람들이 잇달아 일어났고, 난리(亂離) 뒤에 우리 조상(祖上)은 멀리 외가(外家)에 찾아가 함께 살려고 남하(南下)하여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고령(高靈)의 가곡(佳谷) 땅에 이..

고령군 쌍림면 합가2리 경주이씨 입향조

■ 이영우(李英雨)/38世 ■ 이영우(李英雨) / 38世 [세계] 벽오 이시발의 10대손 [생졸년] 1853(철종 4)-1913(외정 4)] [세거지] 고령군 쌍림면 합가2리 경주이씨 입향조 경주이씨 벽오공 이시발(碧梧公 李時發)의 10대손으로 자(字)는 문칙(文則), 호(號)는 은송(隱松), 1853년(철종 4) 9월 29일 오늘날 경북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서 종기(鍾基)의 아들로 태어났다. 배위는 성산전씨(星山全氏) 석일(錫日)의 딸로 묘지는 충남금산군 제원면 천내3리에 소재한다. 향토와 벗을 좋아하고 사랑 하였으며 문장에 능하여 향중 벗들이 존경 하였다. 1959년 경북 고령군 쌍림면 합가 2리(안개실 또는상가곡) 안산 선영아래 후손들이 그의 학문을 기리기 위하여 재실 (齋室)을 세우고 이름을 은..

은송정(隱松亭)

■ 은송정(隱松亭) 이영우(李英雨 :1853-1913). 경주이씨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으로 형조판서(刑曹判書)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의 10대손이다. 자(字)는 문칙(文則), 호(號)는 은송(隱松), 1853년(철종 4) 9월 29일 오늘날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서 태어났으며, 향토와 벗을 좋아하고 사랑 하였으며 문장에 능하여 향중 벗들이 존경 하였다. 1959년 경북 고령군 쌍림면 합가 2리(안개실 또는 상가곡) 안산 선영아래 후손들이 그의 학문(學問)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재실 (齋室)이다. ■ 은송정기(隱松亭記) 저번에 고령(高靈)의 이태희(李台熙)라 하는 분이 한권의 가승(家乘)을 가지고, 내집문에 이르러 뵙기를 청(請)하고 말하기를, 이는 우리집의 파보(派譜)이고, 하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