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黃玹) 2

안의 중산 마을에서[安義中山村]

■ 안의 중산 마을에서[安義中山村] 지은이 : 황현(黃玹) 작시년도 : 1898년(광무 2) 조각조각 띠풀 지붕에 반 자 크기 사립문 / 百片茅茨半尺扉 약 향기 포전에 가득하고 비는 실처럼 내리네 / 藥香連圃雨如絲 산중인데도 달력이 집집마다 있으니 / 山中曆日家家有 인삼 농사에 뿌리고 거둘 시기를 알기 위함이라 / 爲揀人蔘種採時 ----------------------------------------------------------------------------------------------------- [주B-001]무술고(戊戌稿) : 무술년(1898, 광무2)에 지은 시이다. 매천이 44세 때이다. [주C-001]중산(中山) 마을 :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다곡리이다.

황현(黃玹)

■ 황현(黃玹) ↑석지 채용신이 그린 매천 황현의 초상화. 매천은 체구가 작고 병이 잦았지만 기상은 날래고 굳세어 가을매가 꼿 꼿이 서 있는 것 같았다. 독립운동가박은식은 매천에 대해 “문장과 기개가 사림 가운데 으뜸”이라고 평가했다. 1855(철종 6)∼1910. 조선 말기의 순국지사·시인·문장가.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운경(雲卿), 호는 매천(梅泉). 전라남도 광양 출신. 시묵(時默)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청년시절에 과거를 보기 위해 서울에 와서 문명이 높던 강위(姜瑋)·이건창(李建昌)· 김택영(金澤榮) 등과 깊이 교유하였다. 1883년(고종 20) 보거과(保擧科)에 응시했을 때 그가 초시 초장에서 첫째로 뽑혔으나 시험관이 시골 출신이라는 이유로 둘째로 내려 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