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비(惠妃) 2

혜비이씨(惠妃李氏)

■혜비 이씨(惠妃李氏) 혜비 이씨(惠妃李氏)는 경주(慶州) 사람으로 부원군 이제현(府院君 李齊賢)의 딸이다.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가 아들이 없자 대신들은 공민왕(恭愍王)에게 명문 가정의 딸로서 아들을 잘 낳을 만한 여자를 왕비로 들일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1359년 5월 이제현의 딸이 왕비로 간택되어 입궁 하였고, 그녀가 바로 혜비 이씨이다. 그녀는 공민왕의 명령에 의하여 홍륜(洪倫)과 한안 등이 여러 왕비들을 강간하려 하자 이를 강력하게 거부하였다. 이 때문에 공민왕이 그녀를 죽이려 하였지만 그녀의 절개가 워낙 대단하여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1374년 9월 공민왕이 살해되자 스스로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여승이 되었다. 그후 비구니로서 정업원(淨業院)에 거주하다가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혜화 궁주 경주이씨 졸기 - 공민왕 후궁 혜비(惠妃).

태종 8년 무자(1408, 영락 6) 2월 3일(임오) / 조선왕조실록 ■ 혜화궁주 경주이씨 졸기 공민왕 후궁 혜비「惠妃,미상~1408년(태종 8)」졸기 - 익재공 이제현의 6녀 혜화 궁주(惠和宮主) 경주이씨(慶州李氏)의 상(喪)에 부의(賻儀)를 내려 주었다. 궁주(宮主)는 고려(高麗) 시중(侍中) 이제현(李齊賢)의 딸인데, 공민왕(恭愍王)이 아들이 없어 후궁(後宮)에 뽑혀 혜비(惠妃)로 봉(封)하였고, 뒤에 여승(女僧)이 되었을 때에는 정업원(淨業院)에 머물러 있었다. 쌀. 콩 30석과 종이 1백권을 부의(賻儀)로 주고, 소도군(昭悼君)의 처(妻) 심씨(沈氏)로 대신 정업원의 주지(住持)를 삼았다. {原文] ○壬午/賜賻惠和宮主 李氏之喪。 宮主, 高麗侍中齊賢之女。 恭愍王無子, 選入後宮, 封惠妃, 後爲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