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규(趙英珪) [생졸년] 미상∼1395년(태조 4) 고려말 조선초의 무신으로. 신창조씨(新昌趙氏)의 시조이다. 초명은 평(評)으로, 조상의 가계가 불분명하고 자(字)나 호(號)를 가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반 평민출신으로 추측된다. 고려말의 명족의 하나인 연안차씨(延安車氏) 견질(堅質)의 첩녀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견질의 형 원부(原頫)는 명유로서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이었으나, 1398년(태조 7)에 하륜(河崙)이 보낸 자객에게 타살되었다. 정몽주(鄭夢周)가 차원부(車原頫)의 대고모의 외손자로서 그와 인척관계에 있다. 일찍이 이성계(李成桂)의 사병(私兵)으로서 천거로 벼슬에 올라, 1385년(우왕 11) 판위위시사(判衛尉寺事)가 되어 함주일대에 창궐하는 왜구를 토벌하기 위하여 이성계의 휘하에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