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창 2

무오당적(戊午黨籍)

■무오당적(戊午黨籍) ●김종직(金宗直) 1431년(세종 13)∼1492년(성종 23) / 향년 62세 김종직의 자는 계온(季溫), 호는 점필재(佔畢齋), 본관은 선산(善山)으로, 강호(江湖) 숙자(叔滋)의 아들이다. 세조 기묘년에 문과에 오르고 성종(成宗) 때 벼슬이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며, 임자년에 죽으니 나이 62세였다. 무오년에 화가 묘(墓: 부관참시를 말함)에 미쳤다. 숙종(肅宗) 때 영의정을 증직하였다. ○ 공이 총각 때 날마다 수만 자(字)를 기억하고 20세 때에는 문명을 크게 떨쳤다. 어세겸(魚世謙)이 공의 시를 보고 찬탄하여, “나는 그의 종 노릇 밖엔 할 수 없다.” 고 까지 말하였다. 계유년에 진사, 기묘년에 문과에 올랐다. 성종(成宗)이 문사들을 뽑았는데 공이 제..

정여창선생신도비명병서(鄭汝昌先生神道碑銘幷序)

문헌공 일두 정선생 신도비명 병서 文獻公 一蠹 鄭先生 神道碑銘 幷序 동계(東谿) 조구명(趙龜命 : 1693~1737) 찬 우리 동방(東方)은 은(殷)나라 태사(太師)가 교화를 베푼 뒤로 이적(夷狄)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성대하게 일었으나 아득한 수천 년 동안 참다운 선비가 드물었다. 고려 말기에는 정 문충공(鄭文忠公 정몽주(鄭夢周)) 한 사람뿐이었고, 우리 국조(國朝)에는 소문이 나서 알려진 분이 다섯 선생인데 선생이 그중의 한 분이다. 선생의 휘(諱)는 여창(汝昌), 자(字)는 백욱(伯勗)이며, 선대의 관향(貫鄕)은 하동(河東)인데, 뒤에 함양군(咸陽郡)으로 옮겨 가서 살았다. 휘 지의(之義)는 종부시 판사(宗簿寺判事)이고, 휘 복주(復周)는 전농시 판사(典農寺判事)이며, 휘 육을(六乙)은 한성부 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