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사 이 충무공 신도비 명(統制使李忠武公神道碑銘) 김육 찬(金堉 撰) 우리 나라가 200년 동안이나 태평을 누린 탓에 백성들이 병란을 알지 못하다가, 총을 쏘고 칼을 멘 도적들이 갑작스레 동남쪽으로 쳐들어왔다. 이에 서울, 개성(開城), 평양(平壤)을 모조리 빼앗기고 일곱 도가 도탄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때 도원수(都元帥) 권공 율(權公慄)이 서울 근처에서 왜적들을 노려 큰 도적을 잡았고, 통제사(統制使) 이공 순신(李公舜臣)이 바다에서 활약하여 큰 공을 세웠다. 그러니 이 두 분이 아니었더라면 명(明) 나라의 육군과 해군이 무엇을 믿고 힘을 썼을 것이며, 종묘 사직의 무궁한 국운(國運)이 어디에 힘입어 다시 이어졌겠는가. 그런데 도원수의 무덤에는 이미 큰 비석이 세워졌건만, 통제사의 무덤에는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