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현(李齊賢) 2

박충좌(朴忠佐)가 북경(北京)으로 올라갈 때 전송하다.

익재난고 제1권> 시(詩) ■ 송도(松都)에서 소경(少卿) 박충좌(朴忠佐)가 북경(北京)으로 올라갈 때 전송하다. 지은이 : 李齊賢 : 1287(충렬왕 13)~1367(공민왕 16). 옥피리 서너 곡조 끝마치고 / 玉管停三疊(옥관정삼첩) 금잔으로 취하도록 권해보세 / 金杯勸十分(금배권십분) 임금님 은총에 보답할 뿐 / 但應期報主(단응기보주) 우리들 이별은 애석히 여길 것 없지 / 不用惜離群(불용석리군) 풀이 다 마르니 낙타는 사막에서 울고 / 草盡駝鳴磧(초진타명적) 바람이 높으니 기러기는 구름 속에서 울부짖네 / 風高鴈叫雲(풍고안규운) 평생 뜻은 사방에 한 번 나서려고 했었는데 / 平生四方志(평생사방지) 밤에 누워 꿈을 꾸면 그대 따라가리 / 淸夢又隨君(청몽우수군) ---------------------..

열헌공의 3자 10손

■ 경주이씨 중흥조 열헌공(悅軒公)의 3자(三子) 10손(九孫) 중시조인 소판공 이거명(蘇判公 李居明)의 15세인 열헌공 핵(悅軒公 翮)은 고려시대 문하평리(門下評理)를 지내셨으며, 아들 셋과 손자 열 모두가 당시대인 고려 때 크게 세상에 이름을 떨치게 되어. 모두 3자 10손이라고 극찬을 유례 한데서 연유합니다. ●열헌공(悅軒公) 핵(翮)은 세 아들을 두셨는데, 장자(長子)인 성암공 인정(誠菴公 仁挺)은 광주판관(廣州判官)을 거쳐 우정언(右正言)에 이르렀고, 차자(次子)인 동암공 진(東菴公 瑱)은 진사(進士)시와 문과시(文科試)에 장원급제하여 상의 도첨의사사 찬성사(商議都僉議司事 贊成事)를 거쳐, 검교첨의정승(檢校僉議政丞)에 이르렀으며, 시문으로 일세에 이름을 떨친 분이셨다. 삼남(三男)인 송암공 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