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인(李有仁) 2

나주금성관(羅州錦城館)

나주금성관(羅州錦城館) 금성관은 나주목의 객사이다. 객사란 고려~조선시대 때 지방의 궁실로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 또는 궐패를 모셔두고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을 유숙하게 하던 곳이다. 현재 옛 나주읍성 내에는 나주목사내아, 관문인 정수루와 서문밖에 나주향교 등이 있다. 이 건물은 조선 초기인 성종 18년~20년(1487.4.12~1489.7.20) 때인 이유인(李有仁) 목사(牧使-正三品) 가 재직하면서 건립한 것으로, 1603년(선조 36)에 크게 중수하였고, 1884년(고종 21)에 목사 박규동(朴奎東)이 또다시 중수하였다. 1910년 이후 민족항일 기에는 건물의 일부를 개조하여 군청 청사로 사용하다가 그 뒤 1963년과 1976년 두 차례에 걸쳐 완전 해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복원전 망..

당시품휘(唐詩品彙)-명나라 고병(高棅)이 편찬한 唐詩選集.

■ 당시품휘(唐詩品彙) 明나라 고병(高棅,1350~1423)이 편찬한 당시선집(唐詩選集)으로 조선조 중기 甲辰字 금속활자로 간행한 [당시품휘] 57-60권 1책. 甲辰字는 1484년(성종 15)에 만든 동활자로 辛卯字라고도 한다. 기존의 甲寅字 ·乙亥字가 주조한 지 오래되어 마모가 심하고 부족한 글자가 있었기 때문에 이에 왕명을 받은 이유인(李有仁, 禮曹參判을 역임, 樂安郡守 繼蕃의 子) ·권건(權健, 知中樞府事를 지냄, 우의정 擥의 子) 등이 당본(唐本) 《구양공집(歐陽公集)》과 명관판(明官版)인 열여전(烈女傳)을 字本으로 하고, 모자라는 글자는 박경(朴耕)으로 하여금 보서(補書)하게 하여 30여만 자를 大字 ·小字별로 8개월에 걸쳐 활자를 주조하였다. 이 활자는 庚子字보다 글자가 약간 작으면서도 정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