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봉정사 2

경주 덕봉정사(德峰精舍)

[경북일보] 김동완 자유기고가 지면개제일 : 2017.02.10.(금). 경주 덕봉정사(德峰精舍) 굴곡진 인생 끝자락에서 마침내 발견한 마음의 안식처 ↑덕봉정사 전경 : 소나무와 배롱나무. 대나무. 시원한 연못이 어울러져 경승(景勝)을 이루고 있다. 덕봉 이진택(李鎭宅·1738~1805)은 낭만가객이었고 풍운아였다. 소신 있는 행정가였고 세상을 바꾸는 개혁가이기도 했다. 정조 재위 시절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 성균관 전적 예조정랑 사헌부 지평을 거쳐 사헌부 장령을 지냈다. 젊은 시절 과거에 낙방하자 금강산을 다녀와 ‘금강산유록’을 남겨 이름을 얻었다. 정조의 신임을 얻어 백련을 선물 받았다. 왕궁이 있는 세심대에서 왕과 함께 시를 주고받을 정도로 시문도 뛰어났지만 정조가 죽은 뒤 65세의 나..

덕봉정(德峯亭)

2007-06-05 07:47:29 입력/영남일보/글·사진=김신곤기자 德峯선생, 茶山과 2년간 사헌부에 근무…개혁 전력 정조의 탕평책 적극 실천…악습타파 앞장 사도세자 신원 상소 등 義로 일관한 일생 (제자·자문: 養齋 이갑규) 경주시 토함산 기슭 마동에 자리한 덕봉정(德峯亭)은 이진택(李鎭宅 · 1738(영조 14)∼1805(순조 5)이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머물던 곳이다. 덕봉정사(德峯精舍)로 불리기도 하는 이 정자는 덕봉이 본래 태어난 외동읍 방어리를 떠나 구정동(현 소정리), 지금의 경주 온천관광호텔 뒤편에 초당을 지은데서부터 비롯되었다. 그 후 조선 광무(光武) 9년(1905)에 덕봉의 증손자인 야은(野隱) 이우영(李祐榮 ·1822~1913)이 증조부의 유촉(遺 )이 서려 있는 마동에 정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