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업회(勸業會) 3

보재 이상설의 사상

보재 이상설의 사상 이재권/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과 교수[논문] Ⅰ. 시작하는 말 이상설(李相卨)은 이준열사와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여 세계각국의 외교관들에게 일본의 조선침략의 부당함을 알리고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호소했던 독립운동가의 한 분이다. 이것이 필자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고등학교 국사 시간을 통해서 배운 이상설에 대한 상식적인 지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이상은 잘 모른다. 그가 충북출신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필자도 이상설에 대하여 여기까지 알고 있었다. 논문을 쓰기위해 공부를 하면서 이상설이 대단한 인물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상설에 대한 연구는 인하대학교사학과 명예교수인 제천출신 윤병석의 업적이 전부인 것 같다. 즉 윤병석의 저서..

대한광복군정부(大韓光復軍政府)

[정부]대한광복군정부 1914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권업회(勸業會)를 이끈 이상설(李相卨)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망명정부. [구분] 망명정부 [설립연도] 1914년 [설립목적] 조국의 독립 쟁취 [소재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주요활동] 독립전쟁 수행, 병사 훈련 1911년 항일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조직된 권업회는 이상설을 초대 의장으로 추대하고, 광복군 사관을 양성하기 위하여 1913년 사관학교 대전학교(大甸學校)를 설립·운영하였다. 또한, 러시아의 극동지역 총독과 교섭하여 광복군이 사용할 군영지를 조차하고, 광복군 병사의 양성을 위하여 양군호(養軍號)와 해도호(海島號)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그 결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시베리아 전역에서 훈련받은 무장 병력 약 3만 명을 확보하게..

이상설(李相卨)

독립운동가 이상설 1870. 12. 7 충북 진천출생~1917. 3. 2. 연해주 니콜리스크에서 순국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특사로 파견되었으나 외교권이 없는 나라의 대표라는 제국주의 열강의 반대로 실패하고, 이후 각국에서 외교운동을 벌였다. 1914년 이동휘(李東輝)·이동녕(李東寧) 등과 함께 중국과 러시아령 등에 있는 동지를 모아 대한광복군정부를 세웠다. 본관은 경주. 자는 순오(舜五), 호는 보재(溥齋)이다. 관직생활 및 국권회복운동 아버지는 행우(行雨)이나, 1876년 용우(龍雨)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1894년 조선왕조 마지막 과거인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춘방시독관에 제수되고 다음해 비서감비서랑에 임명되었다. 1896년 성균관 교수가 되고, 탁지부재무관에 임명되었으며, 이무렵 헐버트와 친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