隱松亭 2

은송처사 이공 영우 행장

■ 은송처사 이공 행장(隱松處士李公行狀) 공(公)의 휘(諱)는 영우(英雨)요. 자는 문칙(文則). 성(姓)은 이씨이니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상조(上祖) 휘(諱) 알평(謁平)은 신라(新羅) 좌명공신(佐命功臣) 이었다. 고려조(高麗朝)에 이르러 휘 제현(齊賢)이 계시니 문장(文章)과 덕업(德業)으로 세상에 드러나 세상 사람들이 익재(益齋)선생이라 칭송하였다. 당시 종사(宗師-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스승)가 되어 여러 차례 시랑(侍郞-正四品)에 배수(拜授-除授) 되었으며,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에 봉해졌고, 시호(諡號)는 문충(文忠)이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휘 원(黿)이 계시니 예조좌랑(禮曹佐郞-正六品)이었고, 호(號)는 재사당(再思堂)이다. 김 한원당(寒暄堂)과 함께 점필재(佔畢齊)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은송정기(隱松亭記)

■ 은송정기(隱松亭記) 역문(譯文) 저번에 고령(高靈)의 이태희(李台熙)라 하는 분이 한권의 가승(家乘)을 가지고, 내집문에 이르러 뵙기를 청(請)하고 말하기를, 이는 우리집의 파보(派譜)이고, 하나는 곧 우리 11대조가 되는 남포공(藍浦公)의 순절(殉節) 한때의 실상(實狀)을 기록(記錄)한 것이다. 남포공(藍浦公)은 벽오공(碧梧公)의 第五子로서 일찍이 벼슬하여 외직(外職)으로 나가서 남포현(藍浦縣 : 오늘날 충남 보령시)을 다스리다가 丙子年[1636(인조 14)]에 북쪽 오랑케가 일으킨 난리(亂離)를 만났다. 나라에는 굶어죽는 사람들이 잇달아 일어났고, 난리(亂離) 뒤에 우리 조상(祖上)은 멀리 외가(外家)에 찾아가 함께 살려고 남하(南下)하여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고령(高靈)의 가곡(佳谷) 땅에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