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汝昌 2

정여창선생신도비명병서(鄭汝昌先生神道碑銘幷序)

문헌공 일두 정선생 신도비명 병서 文獻公 一蠹 鄭先生 神道碑銘 幷序 동계(東谿) 조구명(趙龜命 : 1693~1737) 찬 우리 동방(東方)은 은(殷)나라 태사(太師)가 교화를 베푼 뒤로 이적(夷狄)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성대하게 일었으나 아득한 수천 년 동안 참다운 선비가 드물었다. 고려 말기에는 정 문충공(鄭文忠公 정몽주(鄭夢周)) 한 사람뿐이었고, 우리 국조(國朝)에는 소문이 나서 알려진 분이 다섯 선생인데 선생이 그중의 한 분이다. 선생의 휘(諱)는 여창(汝昌), 자(字)는 백욱(伯勗)이며, 선대의 관향(貫鄕)은 하동(河東)인데, 뒤에 함양군(咸陽郡)으로 옮겨 가서 살았다. 휘 지의(之義)는 종부시 판사(宗簿寺判事)이고, 휘 복주(復周)는 전농시 판사(典農寺判事)이며, 휘 육을(六乙)은 한성부 좌..

김종직(金宗直).

점필제 김종직(佔畢齋 金宗直) 김종직(金宗直)은 문장중심·정치중심인 한당류(漢唐類)의 학풍과, 철학의 이론 부문을 치중하던 송학류(宋學類)의 학풍이 혼합된 시대에 살았다. 이 시기에는 변계량(卞季良)· 윤희(尹憘)· 정인지(鄭麟趾)· 신숙주(申叔舟)· 서거정(徐居正)· 양성지(梁誠之)등 많은 거유들이 있었으나, 이들은 순유(醇儒)로 보기 어려운 점도 없지 않다. 김균(金鈞) 김말(金末) 김반(金泮)등의 이른바 경학삼김(經學三金)과 김종직의 부친 김숙자(金叔滋)가 경학에 정통하였다고 하나 이를 뒷받침 할만한 문헌이 없어서 그들의 학문과 사상의 깊이를 뚜렷이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림파(士林派)의 거두인 김종직에 대해서는 그의 문집이나 여러 문헌을 통하여 전반에 걸쳐 대체적인 윤곽을 이해할 수 있다. 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