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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설 특사의 불꽃같은 독립운동

잃어버린 한국고대사 연구회 이상설 특사의 불꽃같은 독립운동| 역사이야기 홍순주 | 조회 249 |추천 0 | 2015.08.14. 12:31 이상설((李相卨, 1870~1917) 선생은 1870년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태어나 7세 때인 1876년, 동부승지 이용우의 양자가 되어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선생은 한학뿐만 아니라 근대적 학문도 거의 독학으로 도달한 비범한 인물이었는데 1894년(고종 31년) 25세 때 조선조의 마지막 과거(갑오문과)에 급제하기에 이르렀다. 관계에 진출한 선생은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제수되었고 그 후 1896년 1월에는 27세의 나이로 성균관 교수 겸 관장이 되었으나 관직생활은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선생은 전통 학문인 성리학을 바탕으로 하는 유학은 물론, 정치, 법률..

대한광복군정부(大韓光復軍政府)

보재 이상설선생(溥齋李相卨先生) (1870. 12. 7 ~ 1917. 3. 2) 김도형(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 1. 학문과 관인생활 이상설 선생은 1870년 음력 12월 7일 충청북도 진천군(鎭川郡) 덕산면(德山面) 산척리(山尺里) 산직마을에서 이행우(李行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고, 아명은 복남(福男, 相男), 자는 순오(舜五), 호는 보재(溥齋)라고 하였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재동(才童)-신동(神童)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총명한 아이였기 때문에 그가 7세 때인 1876년 참의를 역임한 동부승지 이용우(李龍雨)에게 출계하여 그의 양자가 되어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서울에서 이제촌(李濟村)이라는 스승으로부터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16세 무렵에는 박의암(朴毅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