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징기스칸 어록(語錄)
□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 쫓겨났다.
□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일이었다.
□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 도 되지 않았다.
□ 배운 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징기스칸이 되었다.
↑징기스칸 화상(1162~1227.08)
Chapel By The Sea(바닷가의 교회당) - Billy Vaughn
징기스칸
어느 날, 18세의 징기스칸이 어렸을 때 정혼한 동갑내기 소꿉친구인 볼테와 결혼하자 그때의 허점을 틈타 메르킷 부족의 기마병 300명이 징기스칸의 주둔지를 기습했습니다. 그때 그의 가족들은 사방으로 도망쳤고, 아내 볼테도 포로로 잡혀 메르킷 부족의 작은 족장인 칠레르 부쿠의 부인이 되었습니다.
간신히 살아난 징기스칸은 주변 부족들과 연합해 메르킷 부족을 공격해서 대승을 거두고 아내 볼테를 찾아옵니다. 그렇지만 볼테는 이미 만삭의 몸이었습니다. 얼마 후 원수의 피가 섞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한때 징기스칸은 아내와 아이를 죽일 생각도 했었지만 그의 어머니 호에륜은 충고했습니다. '아내와 적군도 포용할 줄 모르면서 어찌 세상을 얻겠는냐? 세상을 얻으려면 세상을 덮을 포용력을 갖춰라.'
깊이 생각해보니 포로가 되어 정조를 잃은 아내의 잘못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그 아이를 받아들이고 이름을 '손님'이라는 뜻의 주치라고 지었습니다. 또한 주치를 다른 아들과 차별 없이 똑같이 대했고 아내도 변함없이 사랑했다고 합니다.
징기스칸은 자기 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았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적은 내 안에 있다. 나를 극복함으로 나는 징키스칸이 되었다.' 징기스칸의 훈요 30조 중에 17조에는 그의 넓은 마음을 보여주는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예순 베이는 훌륭한 용사다. 아무리 오래 싸워도 지칠 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모든 병사들이 자기와 같은 줄 알고 성을 낸다. 그런 사람은 지휘자가 될 수 없다. 군사를 통솔하려면 병사들의 갈증과 허기와 피곤함을 같이 느낄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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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기스칸의 편지
푸른 군대의 병사들아
□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고향에서 쫓겨났다.
어려서는 이복형제와 싸우면서 자랐고, 커서는 사촌과 육촌의 배신 속에서 두려워했다.
□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천신만고 끝에 부족장이 된 뒤에도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적진을 누비면서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나는 먹을 것을 훔치고, 빼앗기 위해 수많은 전쟁을 벌였다.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유일한 일이었다.
□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꼬리 말고는 채찍도 없는 데서 자랐다.
내가 세계를 정복하는 데 동원한 몽골인은 병사로는 고작 10만, 백성으로는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내가 말을 타고 달리기에 세상이 너무 좁았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결코 내가 큰 것은 아니었다.
□ 배운게 없다고, 힘이 약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글이라고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고, 지혜로는 안다 자모카를 당할 수 없었으며, 힘으로는 내 동생 카사르 한 테도 졌다.
그 대신 나는 항상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었고, 그런 내 귀는 나를 현명하게 가르쳤다.
나는 힘이 없기 때문에 평생 친구와 동지들을 많이 사귀었다. 그들은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나를 위해 비가 오는
들판에서 밤새도록 비를 막아주고, 나를 위해 끼니를 굶었다.
나도 그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터를 누볐고, 그들을 위해 의리를 지켰다.
나는 내 동지와 처자식들이 부드러운 비단옷을 입고, 빛나는 보석으로 치장하고, 진귀한 음식을 실컷 먹는 것을 꿈꾸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달린 끝에 그 꿈을 이루었다. 아니, 그 끔을 향해 달렸을 뿐이다.
□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땡볕이 내리쬐는 더운 여름날 양털 속에 하루 종일 숨어 땀을 비 오듯이 흘렸다.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고, 가슴에 화살을 맞고 꼬리가 빠져라 도망친 적도 있었다.
적에게 포위되어 빗발치는 화살을 칼로 쳐내며, 어떤 것은 미쳐 막지 못해 내 부하들이 대신 몸으로 맞으면서 탈출한 적도 있었
다. 나는 전쟁을 할 때면 언제나 죽음을 무릎 쓰고 싸웠고, 그래서 마지막에는 반드시 이겼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극도의 절망감과 죽음의 공포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아는가?
나는 사랑하는 아내가 납치됐을 때도, 아내가 남의자식을 낳았을 때도 눈을 감지 않았다.
숨죽이는 분노가 더 무섭다는 것을 적들은 알지 못했다.
□ 나는 전쟁에 져서 내 자식과 부하들이 뿔뿔이 흩어져 돌아오지 못하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더 큰 복수를 결심
했다. 군사 1백 명으로 적군 1만 명과 마주쳤을 때에도 바위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숨이 끊어지기 전에는 어떤 악조건 속에서
도 포기하지 않았다.
□ 나는 죽기도 전에 먼저 죽는 사람을 경멸했다.
숨을 쉴 수 있는 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나는 흘러가 버린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아직 결정되지 않는 미래를 개척해 나갔다.
□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 자신을 극복하자 나는 징기스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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