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역대 대통령 자료

대통령 외삼촌의 죽음

야촌(1) 2022. 11. 26. 01:09

■ 대통령 외삼촌의 죽음

 

그들은

『대통령 외삼촌을 저렇게 내버려 두다니 박대통령은 벌 받을 사람』

이라고 한 마디씩 했다.

 

 

1965년 여름, 청와대 정보비서관 權尙河는 중앙정보부와 군 방첩대 및 경찰 계통으로부터 보고되는 대통령 친인척 관련 정보를 검토하던 중 서울 서대문구 모래내(남가좌동) 빈민촌에 박정희 대통령의 외삼촌이 생존해 있다는 내용을 발견했다. 권비서관은 즉시 모래내 빈민촌을 방문했다.
  
  담도 없는 움막촌을 뒤지며 소문의 주인공을 찾아 냈을 때는 빈민촌 사람들이 모여들어 부러운 듯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통령 외삼촌을 저렇게 내버려 두다니 박대통령은 벌받을 사람』이라고 한 마디씩 했다. 권상하가 만난 사람은 어머니 수원 백씨의 남동생 백한상이었다.

 

그는 박정희 집안이 상모리로 이주하여 농사지을 땅도 없을 때에 수원 백씨 선산을 관리하는 위토답을 농토로 제공하고 박정희의 아버지 박성빈과 자주 술을 마시기도 했다.
  
  권비서관이 찾았을 당시 백한상은 이미 팔순이 넘은 노인으로 서너 명의 자식들과 움막 속에 누워 있었다. 움막속으로 들어 간 권상하는 「사람 살 곳이 못되는 곳」이란 생각을 했다고 한다. 권상하가 백한상 노인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니 틀림없는 박대통령의 외삼촌이었다.
  
  권비서관은 청와대로 돌아와 박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박정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동안 혼자만 알고 있던 내용을 말하더란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부터 나한테 백모라는 자로부터 서너번 편지가 왔어. 성이 백씨인 걸 보니 외가쪽과 관계가 있을 성싶은데, 이 친구는 자기가 전직 형사라고 소개하더구먼. 그런데 편지에는 내 외삼촌이 사업에 실패해서 어디서 어렵게 살고 있다면서 외삼촌한테 뭘 해 주시오, 뭘 사 주시오 하고 거의 협박조로 편지를 썼어. 내가 볼 때 이놈은 외삼촌을 파는 사기꾼으로 생각되어 일체 다른 사람에게 말도 안하고 있었지.』
  
 『모래내 움막집에 계신 분은 틀림없이 각하의 외삼촌이십니다.』
  
 박정희는 난처한 듯 권상하에게 되물었다.
  
 『내가 어떻게 해 줘야 되나?』

『움막에서 살고 계시는 데 남보기 창피합니다. 집이나 한 채 사 줍시다.』
  
   박정희는 누런 봉투에 돈을 넣어 권비서관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방 두칸짜리 한옥 한채나 사 드리게.』
  
  권상하씨의 증언-.
  
  『대통령께서 주신 돈은 더도 덜도 아닌 방 두칸짜리 한옥을 살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그 당시 웬만한 집들은 적어도 방이 세 칸은 되었지요. 방 두 칸에 기와 얹은 한옥은 찾기조차 어려워 그 돈으로 근근히 집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권비서관은 백한상의 아들을 서울시청에 부탁해 수도국에 취직을 시켜주기도 했다. 박대통령의 외삼촌은 약 1년 뒤 이 집을 몰래 팔아 버리고 다시 모래내 빈민촌으로 들어갔다. 이런 사실을 안 권비서관이 노인에게 달려가 영문을 물었다. 노인은 『빚 갚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권상하는 할 수 없이 박대통령에게 어렵게 말을 꺼내어 돈을 마련해 집을 다시 사 주었다. 이번에는 권비서관이 자주 백노인의 근황을 알아보곤 했다. 1968년 여름, 백한상 노인은 몸이 아프다고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권비서관이 그를 세브란스 병원에 데려갔다. 백 노인을 진찰한 의사는 『폐암 말기여서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권상하는 어떻게 하든 치료를 해 달라고 매달렸다.
  
 『암이 온 몸에 퍼져 가망이 없습니다. 오래 살 수도 없을 테니 고향에서 사시면 공기가 좋아 편히 계시다가 가실 수 있을 겁니다. 수술은 안됩니다.』
  
  권비서관이 박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그 분 고향이 선산군 약목이니 거기 좀 모셔다 드리게.』
  
  권상하는 박대통령의 외삼촌을 고향마을로 모셔다 주고 상경했다. 고향에 도착한 백노인은 며칠 뒤 혼자 서울로 돌아와 버렸다. 주변에서 『큰 병은 서울 가서 고쳐야 한다』며 부추키는 바람에 고향에서 쉬지도 못한 채 세브란스 병원을 다시 찾았던 것이다.

 

얼마 후 권 비서관은 세브란스 병원으로부터 백한상 노인이 입원했다가 사망했으며 시신은 백노인의 사위가 인수해 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권비서관이 수소문해 보니 백노인의 사위는 잡역부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용산역 구내 이발소 주인이었다. 벽돌을 대충 쌓아 바람막이로 만든 이발소의 시멘트 바닥에는 백노인의 시신이 거적에 덮힌 채 놓여 있었다.

 

백노인의 사위는 시신을 병원에서 이발소로 옮겨 놓은 뒤 잡역부들과 밤 새 술을 마시며 청와대로부터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최근에 기자를 만난 권상하씨는 『말로 다 옮길 수 없는 기구한 일들을 겪어야 했다』며 대통령 친인척 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사건을 수습한 뒤 朴대통령에게 전말을 보고하자 박정희는 대구사범 동기생 권상하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야, 이 사람아. 어떻게 그 노인이 다시 서울로 올라와 돌아가실 때까지 모르고 있었나?』 『고향에 모셔다 드린 지 며칠 안되어서 올라온 것 같습니다.』
  
  『거기 계시도록 왜 단속하지 못했노? 자네는 어찌 일을 그리 보나?』

『이렇게 말썽일으키는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저는 한다고 하는데 더 이상 방법이 없습니다.』
  
  『없으면 그만 둬.』
  
  친구이자 대통령으로부터 이렇게 심한 질책은 처음 받아보았다는 권상하 비서관은 사직할 결심을 했다고 한다.
  
  『대통령 친인척 관리를 5년 동안 하면서 저의 친인척으로부터도 인색하다고 욕을 많이 먹어야 했습니다. 솔선수범하려니 무척 힘이 들었지요.

 

친구로 하여금 골치를 썩이며 친인척 관리를 하도록 채근하던 박대통령의 자세가 세월이 갈수록 그리워집니다.』
(박정희 傳記에서)

 

출처 >趙甲濟 닷컴(2007-03-04, 2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