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공신록(功臣錄)

朝鮮時代 功臣의 種類

야촌(1) 2019. 11. 22. 10:07

朝鮮時代 功臣의 種類

 

공신이란?

국가나 왕실을 위하여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주던 칭호이며, 이는 중국의 제도를 모방한 것으로 신라시대에 이미 녹공(錄功 :공신으로 봉해진 사람을 기록한 문서)을 했다는 기사가 있다.

 

고려 때에는 왕건이 개국에 공을 세운사람들에게 3등급으로 구분하여 각 공을 세운 정도에 따라 상을 내렸으며, 공신당(功臣堂), 혹은 공신각(功臣閣)을 두어 1등 및 2등 공신의 화상을 벽에다 그려 개국벽상공신(開國壁上功臣)이라 일컬었고, 훈전(勳田)을 내려 대대로 그 자손을 관직에 등용하였습니다.

 

이러한 공신들에게 초기에는 녹권(錄券)을 주어 공신증명으로 하였으나, 말기의 중흥대신에게는 녹권 이외에 따로 교서를 주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 태조를 도와 조선개국에 공을 세워 녹훈(錄勳)된 개국공신 및 정사·좌명공신을 비롯한 28종에 이르는 공신이 있었다.

 

이러한 공신들에게는 공을 세운 정도에 따로 등급을 나누어, 영작(榮爵), 토지, 노비, 금 등을 지급하고 자손들에게는 음직(蔭職, 과거가 아닌 조상의 공으로 주는 벼슬)을 주었다. 공신에 대한 사무는 공신도감(功臣都鑑), 충훈부(忠勳府) 또는 공신상훈교서(功臣常勳敎書)에서 맡았다.

 

공신에게 지급하는 문서의 녹권은 공신축(功臣軸) 또는 철권(鐵券)과 별칭하여 공신전체의 공적과 상전을 기록한 공신도감이 발급하고, 교서(敎書)는 수사자(受賜者) 개인의 공적과 상훈을 기록한 개별문서이다. 다음은 조선시대 시기별로 나눈 공신의 종류이다.

 

▶개국공신(開國功臣)
     1392년(태조 원년) 태조가 수창궁에서 즉위하면서 조선개국에 공이 많은 신하들에게 3등급으로 공신을 책록함.

▶정사공신(定社功臣)
    1398년(정종 즉위년) 정도전, 남은 등을 이방원이 주살하고, 그에 대하여 신하들에게 2등급으로 공신을 책록.

▶좌명공신(佐命功臣)
    1400년(태종 원년) 회안대군의 난을 평정시킨 신하들에게 4등급으로 공신을 책록.

▶정난공신(靖難功臣)
    1453년(단종 원년) 수양대군이 황보인,김종서 및 안평대군 등을 주살하여 세종의 충신을 제거한 공으로 책록.

▶좌익공신(左翼功臣)
    1454년(세조 원년) 정인지, 한명회, 권남 등이 단종을 폐하고, 세조를 추대시킨 공으로 책록.

▶적개공신(敵愾功臣)
    1467년(세조13) 길주에서 반란을 일으킨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공신을 책록.

▶익대공신(翊戴功臣)
    1468년(예종 즉위년) 남이, 강순 등을 반역 혐의로 처단하는데 공을 세운 신숙주, 한명회 등에게 내린 훈명.

▶좌리공신(佐理功臣)
    1469년(성종2) 신숙주, 한명회 등의 신하들에게 임금을 잘 보좌하고 정치를 잘하였다는 공으로 내린 훈명.

▶정국공신(靖國功臣)
    1506년(중종원년) 박원종, 성희안 등이 연산군을 폐출하고, 진성대군을 추대하여 중종 반정을 이룬 공으로 책록.

▶정난공신(定難功臣)
    1507년(중종 2) 이괄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책록.

▶위사공신(衛社功臣)
    1546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를 일으키고 윤임 등 대윤파를 몰아낸 공으로 내린 훈명.

▶광국공신(光國功臣)
    1590년(선조 23) 종계변무(宗系辨誣, 명나라 역사에 이성계가 고려의 권신 이인임의 아들로 되어있어 고쳐달

  라고 주청한 일)의 성공으로 내렸던 훈명.

▶평난공신(平難功臣)
    1589년(선조 22) 정여립의 모반 기미를 박충간이 알아채고 상소하여 반란을 평정한 공으로 책록.

▶호성공신(扈聖功臣)
    1592년(선조25)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책록.

▶선무공신(宣武功臣)
    1592년(선조25) 임진왜란 때 문무대신이 나라의 중흥을 협찬한 공으로 책록.

▶청난공신(淸難功臣)
    1596년(선조29) 이몽학이 일으킨 반란을 홍가신이 평정한 공으로 책록.

▶정운공신(定運功臣)
    1612년(광해군4) 소북파 유영경 등의 제거에 공을 세웠던 사람들에게 내려진 훈명.

▶정사공신(靖社功臣)

    1623년(인조원년) 김류, 이귀 등이 광해군을 폐출하고, 능양군을 옹립하여 인조반정을 결행한 공으로 책록.

▶위성공신(衛聖功臣)
    1613년(광해군5) 임진왜란 중에 광해군을 호종한 공으로 유몽인에게 내린 훈명.

▶익사공신(翼社功臣)
    1613년(광해군5) 이이첨, 정인홍 등이 합작하여 임해군, 영창대군, 김제남 등을 살해한 공으로 내린 훈명.

▶형난공신(亨難功臣)
    1613년(광해군5) 대북파가 소북파의 세력을 없애려고 김직재 등을 모반 혐의로 처형시킨 공으로 책록.

 

▶진무공신(振武功臣)
    1624년(인조2) 이괄이 일으킨 난을 반란한 공으로 책록.

▶소무공신(昭武功臣)
    1627년(인조5) 이인거가 일으킨 난을 적발한 공으로 책록.

▶영사공신(寧社功臣)
    1628년(인조6) 유효립, 정심 등을 죽이는데 공이 있는 사람들에게 책록.

▶영국공신(寧國功臣)
    1645년(인조22) 심기원의 역모사건을 평정한 공으로 내린 훈명.

▶부사공신(扶社功臣)
    1723년(경종3) 임인의 옥사을 일으키며 노론을 제거한 공으로 내린 훈명.

▶분무공신(奮武功臣)
    1728년(영조4) 이인좌, 정희량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오명항 등에게 내린 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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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공신(原從功臣)은 정 공신을 받쳐준 준 공신을 말한다.

 

조선시대 28차례에 걸쳐 책봉된 공신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10~50여명 정도였다.

 

이렇게 적은 수의 공신책봉에서 제외된 무수한 유공자들을 포상하는 방식이 바로 원종공신 제도이다.

정공신은 혁혁한 공적으로 책봉된 공신이라면, 원종공신은 정 공신을 도운사람들로 준 공신 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개국공신의 원종공신은1천 6백 여명이 넘었으며, 선무공신의 경우는 9천여 명이 넘었다고 한다.

원래 원종의 원은 중국에서는 元을 쓰지만 명태조 주원장의 원이라 조선에서는 글자를 꺼려 原으로 바꾸어 썼다.

 

준 공신이었기에 정 공신에 준하여 책봉이 되었다.

정공신이 결정된 이후 녹훈도감에서 주관을 하였으며, 명칭은 정 공신 대표명칭 다음 원종을 더했다.

원종공신도 정공신과 마찬가지로 1등, 2등, 3등으로 구분하여 포상을 달리 하였다.

 

조선시대 원종공신의 운명은 정 공신에게 달려 있었다.
정공신이 삭제되는 경우 원종공신도 자동적으로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명종대의 위사공신, 광해군대의 위성공신, 정운공신, 익사공신, 형난공신, 경종대의 부사공신의 경우 정공신과 함께 삭제되어 녹권도 모두 회수하였다. 이처럼 수많은 공신을 둔 이유는 국가의 위난상황에서 나라와 왕실에 조금이라도 공로가 있는 모든 유공자들을 포상함으로써 나라와 왕실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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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에 대한 소고(小考)

 

선조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선무원종공신은 총 9060명(선조38년, 1605년 4월)이라고 되어있으나 임난영남의병사(임난호국영남충의단보존회.2001.3월)가 이 녹권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밝혀진 것은 106명이 적은 8,954명으로 확인 되었다.

 

이 원인을 확실히 할 수 있는 근거가 남아 있지 않아 안타깝다.

또한 선조실록의 경우에도 광해군조에 편찬한 실록과 인조 조에 편찬된[선조수정실록]의 기록내용이 차이가 있는 것은 초기 공신 책록 이후 수정실록편찬 시 중간에 공신녹권의 삭재 등 변경사항이 있었던 것으로 사료 된다

 

그러나 이 녹권에 등재된 인물이 임해군부터 사노에 이르기까지 총 망라한 것은 당시의 사회적 통념으로 볼 때 혁신적 결정으로 가치가 높다고 본다. 그러나 이 녹권의 문제점이라고 한다면 공신의 구체적 내용 즉 조, 부, 향리, 활동지역, 자, 호, 본관 등의 기록이 없이 관(官)과 이름만 나타나 있어 어느 지역에서 어떤 활동을 한 공신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또한, 이 녹권은 동명2인 동명 3인 등 同一 이름으로 등재된 공신들이 많다.

그런 데 이 녹권에는 단지, 이름과 관직 혹은 신분(사노, 천민 등)만 적어 놓아 어느 지역의 누구인지를 분별하기도 쉽지 않다.

 

당시는 같은 성씨일 경우 항렬로 이름을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같은 일족 내에 동명이인이 많았다.

임남영남의병사에 의하면 영남출신선무원종공신은 총 699명으로 이중 동명이인은 70명으로 집계되었다.

 

즉 699명중 140명이 동명2인이다. 비율로 20%에 달한다.

임난공신녹권에 등재된 공신 총 8,954명 모든 분에 대하여 조사된 바는 없으나 많은 공신이 동명2인 3인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녹권만 보아서는 이분들의 구체적 활동내용을 구분해서 알아보기는 어렵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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