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를 이끈 이장가(李庄家) 사람들
[대구 매일신문]등록일 : 2017-04-24
[대구를 이끈 이장가(李庄家) 사람들]
항일운동·저항문학·민족자본…일제강점기 애국의 모태.
6월 30일까지 이일우 선생·후손들 발자취 조명 전시회.
↑일본군 총사령관 부인이 할복할 때 썼다는 단도
↑이상정 장군이 망명시절 지녔던 가방.
↑이상정이 망명 직전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에서 썼다는 '망명가'
“일제강점기 애국 모태 ‘이장가 사람들’을 되새기자.”
일제강점기 대구의 애국정신을 이끈 소남 이일우(小南 李一雨1870~1936/이상정, 이상화 백부) 선생과 그 후손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대구를 이끈 이장가(李庄家) 사람들’ 전시회에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일우기념사업회와 KK(경북광유)는 창업 90주년을 맞아 국채보상로 KK 본사 1층 ‘갤러리 경(慶)’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다. 가문 설립 149년을 맞은 ‘이장가’는 문호를 연 금남 이동진(錦南 李東珍,1836~1905) 선생의 후손으로, 소남 이일우 선생과 아들 이상악, 조카인 독립운동가 이상정 장군, 항일 저항시인 이상화, IOC위원을 지낸 이상백, 전 사격연맹 이상오 회장이 망라돼 있다.
한 가문의 인물과 유물역사를 담은 전시회가 열린다는 점에서 각계의 관심도 뜨겁다. KK 이재일 고문은 “소남 선생 후손 중에 훌륭하신 분들이 많은데 상화, 상정 등 몇몇 분들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번 기회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이나 민족기업, 저항 문인, 체육계 유공자 등 문중의 인물들을 한자리에 모아 그 뜻을 기리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시회엔 일제에 의해 강제적으로 맺어진 우현서루 매각 문서와 이장가 사람들의 개인 비품, 토지문서, 상업계약서, 문집, 서찰 등 200여 점이 공개되고 있다. 전시회는 6월 30일(금)까지 열린다.
유물`인물로 본 ‘대구 이장가 사람들’
일제강점기 전후부터 해방까지 격동의 삶을 살았던 이장가 사람들. 대구 각계에 계몽운동의 씨앗을 뿌린 가문의 역사처럼 일가의 사회 진출은 문화계, 학계, 교육계, 스포츠계에 항일운동까지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가문 인물들의 ‘광폭행보’처럼 이들이 남긴 유물과 행적도 다채롭다. 이번 전시회엔 특히 지난달 이일우 선생 고택에서 발견한 근`현대 문서들이 공개됐고 그동안 감춰왔던 문중의 ‘가보’들이 대거 등장했다. 전시회장에 나온 특이한 유물들을 돌아보았다.
◆ 심상찮은 단도(短刀) 한 점 사연은?
전시장 안쪽 코너 전시장엔 낯선 단도(短刀) 하나가 눈에 띈다. 이상정 장군이 일본군에게서 노획한 ‘사연’이 깃든 칼이다. 일찍 망명길에 올랐던 상정은 중국 장개석 총통 밑에서 육군 중장까지 올랐다. 중국에서 해방을 맞은 상정은 승전국 대표로 일본군의 항복문서를 받으러 회담장에 가게 된다.
이때 일본군 총사령관 부인이 패망 소식을 듣고 이 칼로 할복을 했다고 한다. 현장에서 칼을 수습했던 중국군 인사가 ‘당신은 한국인이니 이 칼이 의미 있는 기념품이 될 것’이라며 장군에게 넘겨줬다고 한다. 칼이 일본으로 넘어갔으면 성물(聖物)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니 우리로선 다행스러운 일임이 분명하다.
이재일 고문은 “이상정 장군은 한국인으로 중국군 장성이 되었고 일본 패망 때 일본군으로부터 항복문서를 직접 받았던 독립운동 사상 특이한 이력을 가진 분”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유영애(세무사) 씨는 “말로만 들었던 ‘일본군 사령관 부인의 할복 단도’를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 이상백 IOC 위원 유물들 첫선
이시우의 3남이었던 이상백 IOC 위원의 유물들도 시선을 끈다. 일찍부터 농구선수로 활약했던 그는 1964년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IOC위원에 선정됐다. 위원시절 지녔던 IOC메달과 당시 받았던 훈장, 표창들이 이번 전시장에 나왔다.
1964년 도쿄올림픽 때 사용된 오륜기도 빛이 바랜 채 천장에 걸려 있다. 또 1952년 헬싱키올림픽 이후 국제행사 때마다 들고 다닌 트렁크와 망명 시절 20년 넘게 소장했다는 가방도 그대로 있다. 가죽이 해어지고 경첩이 녹슬었지만 지금도 수납기능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보관 상태가 좋다.
KK 박윤경 대표는 “이장가 사람들은 훈장, 메달 등 서훈품을 개인이 소장하지 않고 모두 소남 집으로 가져와 함께 나누며 집안의 자랑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 상정`상화의 편지`사진도 공개
이번 전시회 유물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각종 서찰, 문서들이다. 지난달 소남 고택에서 발견돼 화제가 됐던 2천여 점 문서 중 30여 점이 이번에 공개됐다. 전시된 문서 중 단연 압권은 이상정 장군의 ‘자서’(自序)다.
‘세척 긴 칼, 절뚝거리는 나귀로 남북을 방황하며’로 시작하는 이 글은 상정이 중국 봉천(심양)으로 망명을 떠나기 전 동대구역에서 남겼다는 통한의 망명기다. 그 문장과 정신에서 상화의 필력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 주변의 평이다. 이 외 중국시절 10년 동안 꼬박 썼다는 망명기록 ‘표박기’도 원본 그대로 공개됐다.
정면 벽에 걸린 40여 장의 사진들도 당시 시대상, 가문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자료다. 사진 중에 상화와 상정이 중국 북경에서 찍었다는 ‘실루엣 사진’이 관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당시 이상정이 전사했다는 소문이 돌자 상화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간다. 형의 생존을 확인한 그는 증거를 위해 사진을 찍었지만 당시 상정이 일제에 의해 수배 상태였기 때문에 실루엣으로 찍어 안부를 알렸다고 한다.
◆ 대구 근대산업 일군 상업문서 공개
이재일 고문은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민족자본 산실로서의 ‘이장가’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후손들은 항일운동, 저항문학 쪽 활약만 부각돼 민족자본, 자강(自强) 분야 공적이 과소평가 됐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농`공업`상업 쪽에서도 일가를 이루었던 소남가의 당시 계약문서, 상업문서가 대거 공개됐다. 일제 경제 침탈에 맞서 이장가에서 설립했다는 ‘수창상회’ 기록은 그동안 실체 없이 구전으로 전해지다 지난달 문서정리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돼 전시장에 나왔다.
또 이장가의 재력의 배경에 대해 그동안 ‘사채놀이로 부를 이루었다는 설’이 근거 없이 떠돌았으나 이번에 경산 옥산에 토지등기, 농지소유문서, 추수기(秋收記) 등이 대거 발견됨으로써 이런 억측을 불식할 수 있게 됐다.
한상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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