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경주이씨 명인록

이성곤(李成坤)

야촌(1) 2019. 8. 5. 03:48

■ 이성곤(李成坤)

    (경주이씨 31世)

 

[정의 및 가계]

이성곤[李成坤. 1665년(헌종 6)~1725년(영조 1)]. 조선후기의 인천부사를 지낸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영(汝永)이다.

공(公)은 고려시대의 명신인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으로, 증조는 형조판서 이시발(李時發)이고 조부는 이조판서를 지낸 이경휘(李慶徽),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郎/正五品)을 역임한 이인식(李寅烒)이고, 어머니는 좌의정 민정중(閔鼎重)의 딸 여흥 민씨 이다. 배위(配位)는 윤두수의 후손인 윤세택(尹世澤)의 딸 해평윤씨와 혼인하여 2남 2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공(公)은 1700년(숙종 26)에 제용감(濟用監=각종 직물 따위를 진상하고 하사하는 일이나 채색. 염색, 직조의 일 등을 맡아보던 관아) 봉사(奉事)에 제수되어 관직에 출사하고. 다음해인 1701년(숙종 27년)에 군자감(軍資監=군수품의 출납을 맡아보던 관아)의 직장(直長), 이듬해에 의영주부(義盈主簿), 의금부(義禁府=왕의 명령을 받들어 중죄인을 신문하는 일을 맡아 하던 관아) 도사(都事)에 제수되었고, 그 해 5월 황간 현감(黃澗縣監)을 역임하였다.

 

1702년(숙종 29)에 차사원(差使員=임금이 중요한 임무를 위하여 파견하던 임시 벼슬)에 오르고, 1708년(숙종 34)에는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王世子를 호위하던 관청)의 사어(司禦), 이듬해에 의흥현감(義興縣監)에 제수되었으나 곧 사직하였다.

 

1713년(숙종 39) 해주판관(海州判官), 1716년(숙종 42) 부사과(副司果), 1720년(숙종 46) 평시령(平市令), 1721년(경종 즉위년) 가평군수(加平郡守)에 제수되었다. 그는 가평군수로 재직 중이던 1722년(경종 2) 9월 29일 제225대 인천부사에 제수되어 1724년(경종 4) 2월 14일 병으로 교체될 때까지 29개월간 재직하였다.

 

재직 중 이성곤의 행적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1723년(경종 3) 5월 중국에서 온 칙사(勅使)가 홍제원(弘濟院=조선 시대에 중국 사신들이 서울 성안에 들어오기 전에 임시로 묵던 공관. 지금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었다.)에 머무를 때 대령하지 않은 이성곤에 대해 벼슬아치의 죄과를 무겁고 가벼움에 따라 엄중하게 캐물어서 밝히는 종중추고(從重推考)를 하라는 비변사(備邊司)의 계(啓=관청이나 벼슬아치가 임금에게 올리는 말)가 있었다.

 

또한 1723년(경종 4) 4월 영종진(永宗鎭)에 소속된 수군 중 도망하고 사망하였거나 자질구레한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조사하지 않았다 하여 다시 문초하라는 비변사의 장계가 있었다. 1725년(영조 원년) 4월 1일 병으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공(公)이 의흥 현감으로 재직 중이던 1711년(숙종 37)에 박세채(朴世采)를 도와 관례의(冠禮儀), 혼례의(昏禮儀), 제례의(祭禮儀) 등 삼례(三禮)의 대강을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하여 해설하고 고금의 여러 서적을 참고하여 쓴 『삼례의(三禮儀)』를 간행하였다.

 

[묘소]

이성곤의 묘소는 오늘날 북측 행정명으로 황해북도 장단군 서원촌에 있다. 선조인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의 묘 좌록 자좌 부부 함폄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부인 해평 윤씨를 오른쪽에 합장(合葬)하였다. 2008년 1월 24일 및 2월 13일 필자가 답사한바 있다.


인천광역시립 박물관에는 이성곤의 사위인 박사백(朴師伯)이 찬한 묘지명(墓誌銘)이 소장되어 있다. 청화백자로 제작된 이성곤의 묘지는 모두 6판으로 구성되었고, 별도의 판에 제목을 ‘조선 인천부사 이공성곤묘(朝鮮仁川府使李公成坤墓)’라 하고 그 밑에 숙인 해평윤씨를 곁에 묻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음 판부터 이름, 자, 본관, 세계(世系) 어머니, 성품, 생장, 학문 수업, 관직 등을 기록하였으며, 생몰년과 함께 장지와 합장 여부를 기록하였다. 최근 일본인 다카하시 미코토[高橋眞]는 청화백자 4매로 구성된 이성곤의 부인 해평 윤씨의 묘지명을 국립 중앙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경종실록(景宗實錄)』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백하집(白下集)』

『삶과 죽임의 이야기』-조선 묘지명(국립 중앙 박물관, 2011)

『네이버지식백과)』

 

집필 편집 : 이재훈

 

 

후기 학자 박세채(朴世采,1631~1695)의 문인 이세환(李世瑍)의 부탁으로 의흥현감(義興縣監) 이성곤(李成坤)

1711년(숙종 37)에 간행한 삼례의(三禮儀) 3권 1책 중간 목판본이다. 내용은 주자 가례(家禮)의 근본정신과

행용(行用)에 근거한 여러 제도를 상고, 취합한 책이다. 

 

↑인천부사 이성곤의 청화백자 묘지석[일본인으로부터 기증 받아 인천시립박물관에 소장]


◇명칭 : 인천부사 이성곤 묘지석
◇시대 : 조선
◇분류 : 묘지석
◇재질 : 도자기 청화백자
◇작가 : 이성곤의 사위 박사백(朴師伯 , 1696~
◇크기 : 15,3~16㎝(가로) x 19.3~22㎝(tpfh)
◇인천시립박물관 소장번호 : 3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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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부사 이성곤에 대한 추고(推考)
(국역 비변사등록 74책 자료)

경종 3년(1729) 5월 11일(음력)>  勅使가 지나는 驛站에 나오지 않은 仁川府使 李成坤 등을 從重推考할 것을 청하는 備邊司의 啓(1723-05-11(음)
 
[제목] 勅使가 지나는 驛站에 나오지 않은 仁川府使 李成坤 등을 從重推考할 것을 청하는 備邊司의 啓
[연월일] : 1729년(경종 3) 05월11일(음)


 
[내용]

비변사에서 아뢰기를
"반송사(伴送使) 조태억(趙泰億)이 인천부사 이성곤(李成坤)과 과천현감 김홍권(金弘權)이 역참에 나오지 않았다고 하여 유사로 하여금 여쭙고 처리할 것을 치계(馳啓)하였습니다. 홍제원(弘濟院)은 칙사가 지나가는 역참이니 수령이 대령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실수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초 칙사는 고양(高陽)을 숙소로 정하였는데 지나갈 때 갑자기 홍제원에 들렸고 그대로 유숙하게 되었으니, 이는 역참의 관원으로 간혹 신병이 있어 미처 대령하지 못하였더라도 용서할 길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경기의 민사가 다급한 이런 때에 두 고을의 수령을 한꺼번에 잡아다 가두는 것은 너무 지나친 듯합니다. 인천부사 이성곤과 과천현감 김홍권은 유사로 하여금 여쭙고 처리하라고 하신 명을 우선 거두시고, 중하게 추고해서 경계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