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국사(國史)

환단고기(桓檀古記)-1911년 간행

야촌(1) 2018. 7. 18. 18:27

■ 환단고기(桓檀古記)

 

[개요]

일제강점 초기인 1911년 평안북도 선천 출신의 계연수(桂延壽)가 『삼성기(三聖紀)』·『단군세기(檀君世紀)

』·『북부여기(北夫餘紀)』·『태백일사(太白逸史)』 등 각기 다른 4권의 책을 하나로 묶어 편찬했다는 한국상고사를 서술한 역사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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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범례에 의하면 평안북도 선천 출신의 계연수가 1911년에 『삼성기(三聖紀)』·『단군세기(檀君世紀)』·『북부여기(北夫餘紀)』·『태백일사(太白逸史)』 등 각기 다른 4권의 책을 하나로 묶은 다음 이기(李沂)의 감수를 받고 묘향산 단굴암에서 필사한 뒤 인쇄했다고 한다.

 

그런데 편저자인 계연수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20년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때 계연수는 다음 경신년(1980)에 『환단고기』를 세상에 공개하라는 말을 제자인 이유립(李裕岦)에게 남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환단고기』는 1979년 수십 부가 영인된 뒤 1982년 일본인 가시마(鹿島昇)가 일역(日譯)하고 원문을 게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세간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4권의 기존 책을 하나로 묶어 탄생시켰다는 『환단고기』는 다음과 같은 내용과 체재를 지니고 있다.

 

『삼성기』는 본디 안함로(安含老)가 지은 것과 원동중(元董仲)이 지은 두 종류가 있었다고 한다. 이 중 계연수 집안에 소장되어 있던 안함로 저작의 『삼성기』를 상편으로, 태천의 진사 백관묵(白寬默)으로부터 얻은 원동중의 『삼성기』를 하편으로 하여 『삼성기전』을 구성하였다고 한다.

 

1457년(세조 3) 세조가 팔도관찰사에 수압령을 내렸던 책들 가운데 그 이름이 등장한 바 있는 『삼성기』는 한국민족의 기원부터 시작하여 단군조선의 건국과 그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삼성은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檀君)을 가리킨다.

 

『단군세기』는 고려 말에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을 지낸 이암(李嵒)이 1363년 관직에서 은퇴하여 저술했다고 한다. 이 책도 계연수가 백관묵으로부터 얻었다고 하는데, 47대 1,096년에 걸친 단군조선의 편년사가 펼쳐져 있다. 아울러 여기에는 그 역대 왕명과 재위기간, 치적 등도 서술되어 있다.

 

『북부여기』는 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范樟)이 저술한 것으로 본디 『단군세기 합편』으로 전해지고 있었는데 삭주의 이형식의 집에서 얻었다고 한다. 『단군세기 합편』 가운데 『단군세기』는 백관묵의 소장본과 글자 한 자의 차이도 없이 일치했다고 한다.

 

태백일사단군세기를 저술한 이암의 현손인 이맥(李陌)이 편찬하였다고 하는데, 계연수의 스승인 이기가 소장했다고 한다.

 

이 책은 우주의 생성을 주로 다룬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 환인이 다스렸다는 환국의 역사를 적은 「환국본기(桓國本紀)」, 환웅의 치세를 서술한 「신시본기(神市本紀)」, 단군왕검이 나누었다는 진한(진조선)·마한(막조선)·번한(번조선) 중 마한과 번한의 역사가 수록되어 있는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 『천부경(天符經)』·『삼일신고(三一神攷)』 등 단군신화와 관련된 경전교리에 관한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 고구려·발해·고려의 역사가운데 민족의 자존을 드날린 대외 관계사를 중심으로 서술한 「고구려본기」·「대진국본기」·「고려국본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태백일사』는 『환단고기』를 구성하는 4권의 책 가운데 가장 분량이 많은 것이다. 이처럼 『환단고기』는 한국 상고시대의 정치와 종교를 서술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 책을 어떠한 관점에서 수용하는가에 따라 한국고대사에 대한 인식은 현저한 차이가 나게 된다.

 

즉 이 책의 사료로서의 가치를 검토하는 일이 필요해지는데, 이에 대한 시각은 그 내용을 수용하는 태도와 비판적 태도, 예컨대 위서(僞書)로 간주하는 견해로 나누어진다. 이 책을 위서로 간주하는 논자들의 입론은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이 책이 편찬된 후 세상에 공개되기까지 약 70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것은 일반의 상식을 뛰어넘는 이례적인 일이다. 뿐만 아니라 계연수나 이유립이 이 책의 공개를 늦추었던 동기가 충분히 납득되지 않기 때문에 그 편찬시기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다.

 

둘째, 이 책은 내용상 관직명·인명·지명·용어 등에 있어 시간적 비약이 지나치게 심하다. 가령, 고구려의 교육기관인 ‘경당(扃堂)’이나 그 관직인 ‘욕살(褥薩)’ 등이 단군조선 때에도 그대로 등장하고 있거니와 ‘문화’·‘원시국가’ 등을 비롯한 근대적 용어도 사용되고 있다.

 

셋째, 이 책은 일제시기에 소개된 신채호(申采浩)의 상고사 인식체계와 그 용어뿐 아니라 광복 이후에 작성된 위서로 밝혀진 『단기고사(檀奇古史)』의 영향까지 받고 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이 책을 위서로 간주하는 논자들은 『환단고기』의 초고는 빨라야 1949년 이후에 성립되었을 것이며, 그 뒤 그 소장자인 이유립이 이를 수정, 보충하여 1979년 세상에 내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