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집 제4권
[추록(追錄)]
《계림세가(鷄林世家)》- 이덕배(李德培) 撰
삼가 살펴보건대 고려 말 전성기에 인재가 성대하게 일어났으니, 공은 일세의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이때에 빼어나게 생장하였다. 명망이 온 세상을 덮었고 감식안(鑑識眼)은 타고났으며 역사에 공을 드리워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으니, 공이 덕(德)을 세운 것이 이와 같았다.
충효가 마음속에 가득하고 영특함과 아름다움이 밖으로 드러나 쇠 종이나 옥경과 같이 영롱하게 울려서 널리 인구에 회자되었으니, 공이 훌륭한 말을 남긴 것이 이와 같았다.
덕을 지니고 있고 또 훌륭한 말씀이 있었으니, 지은 문장은 해와 별과 그 빛을 다투었다. 그런 까닭에 후학들은 산이나 북두성을 바라보듯 공을 우러르고, 후손들은 시귀(蓍龜)를 간직하듯 공의 문장을 보배로 여기었다. 그리하여 영원히 전하려고 문집을 세상에 간행하였으니, 참으로 이른바 나라에서 잘 운 것〔善鳴〕이요 우리 도(道)의 지남(指南)이라 할 것이다.
앞에서는 이 문충공(李文忠公)이 칭찬을 하였고, 뒤에서는 정 문성공(鄭文成公)이 인정을 하였다. 그리고 공의 손자 이영상(李寧商) 공이 강원 도사가 되었을 때 춘천부에서 문집을 간행하였고, 문도공(文度公) 윤회(尹淮)가 이에 발문을 썼으니, 문집을 간행할 때에 필시 집안에 잘 보관해 두었을 것이고 집집마다 비치해 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종중들 중에 문집을 잘 간직하여 유실하지 않은 자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 전서(全書)가 병화를 겪으면서 모두 흩어져 없어졌는데 이제 아주 사라져 버리고 말았으니, 어찌 애석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에 내가 원집(元集)을 구해 보아도 찾을 수 없어 《동문선》에서 시문 약간 편을 찾아 이들을 모아 손수 정사하여 한 질의 책을 엮어서 책 상자 속에 간직해 두고는 혹여 원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바이다.
○또 살펴보건대 공이 동북면 도순문사(東北面都巡問使)로 나갔다가 돌아오려고 할 때, 우리 환조(桓祖)께서 함주(咸州 함흥)의 학선정(鶴仙亭)에서 전별연을 베풀었다. 태조가 당시 17세였는데 환조의 뒤에 서 있었다. 환조가 술을 올리자 공은 선 채로 마셨는데, 태조가 술을 올리자 공은 꿇어앉아 마셨다. 환조가 이상하게 생각하여 묻기를,
“친구의 자식 놈에게 어찌 이렇게 대한단 말이오?”
하자, 공이 대답하기를,
“이 아들은 참으로 신이한 사람이외다. 복덕(福德)은 공이 미칠 바가 아니오. 공의 집안은 이 아들로 인해 반드시 위대하게 될 것이오. 나는 이미 늙었으니, 원컨대 내 자손들을 이에게 부탁하고 싶소.”
하였다.
태조가 조선을 개국하고 왕위에 올라 문정공(文靖公)의 자손들 이름에 모두 ‘입(立)’ 자를 쓰도록 명하였는데, 이는 공이 당시 서서 술을 마셨던 일을 특이하게 생각하여 이름으로써 이를 기린 것이다.
○세속에서 전하기로 우리 태조대왕 때 옥사를 논의하는 날에 태조께서 어필로 ‘이달충의 후손에게는 대벽(大辟 사형)을 시행하지 말라.〔達衷之後勿施大辟〕’라는 8자를 써서 하사하였다고 한다. 대개 민간에서 떠도는 이야기이기는 하나 은전(恩典)에 관한 일이기 때문에 함께 기록하여 지혜로운 자의 판단을 기다리는 바이다.
신묘년(1651, 효종2) 7월 갑오일 후손 통훈대부(通訓大夫) 행 만경현령(行萬頃縣令) 이덕배(李德培)가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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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
[주-01]시귀(蓍龜) : 점을 칠 때 사용하는 시초(蓍草)와 귀갑(龜甲)을 말한다. 고대에 나라에 중대한 일이 있으면 시
초점과 거북점을 쳐서 그 길흉을 판단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매우 공경하고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주-02]잘 운 것〔善鳴〕 : 당나라 한유(韓愈)가 지은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에 나오는 말로, 시문으로 세
상에 명성을 드날리는 것을 비유한다.
[주-03]지남(指南) : 지남거(指南車)의 약칭으로, 방향을 제시해 주는 물건을 비유한다.
[주-04]이 문충공(李文忠公) : 고려 후기의 문신인 이제현(李齊賢)을 가리킨다. 문충은 그의 시호이다.
[주-05]정 문성공(鄭文成公) : 조선 전기의 문신인 정인지(鄭麟趾)를 가리킨다. 문성은 그의 시호이다.
[주D-006]은전(恩典) : 제왕이 신하나 백성에게 내려 주는 은혜를 말한다.
[주-07]이덕배(李德培) : 1598~? 본관은 경주, 자는 후재(厚哉)이며, 아버지는 이종길(李宗吉)이다. 1639년(인조
17) 기묘식년시에 병과(丙科) 6위로 급제하였다. 《國朝文科榜目》
ⓒ 한국고전번역원 ┃ 안세현 안득용 서정환 (공역)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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