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역대 대통령 자료

전두환 대통령(제11대/제12대)

야촌(1) 2015. 10. 12. 18:38

 

◇성명 : 전두환(全斗煥)
◇수상 : 미국 동성훈장

◇생년월일 : 1931년 1월 18일
◇사이트 : 팬카페(전사모)

◇자(字) : 용성(勇星)
◇저서 : 황강의 아침

◇호(號) : 일해(日海)
◇본관 : 완산(完山)
◇출생지 : 경남 합천(陜川)
◇성장지 : 대구(大邱)
◇학력 : 대구공고 제24회 졸업
             육군사관학교 제11기 졸업(學士)
◇육군고급부관학교 졸업
◇미국 육군보병학교 졸업
◇육군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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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全斗煥)의 자(字)는 용성(勇星), 아호는 일해(日海), 본관은 완산(完山)으로, 대한민국의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그는 1931년 1월 18일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에서 완산 전씨(完山全氏) 전상우(全相禹)와 광산김씨(光山金氏) 김점문(金點文)의 10남매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나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제11·12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1970년대 말 박정희대통령의 집권말기 한국경제상황은 말 그대로 칼 날 위에선 무당마냥 조마조마 했다.

당시 성장에 목숨 걸었던 한국경제는 18년간 고질적인 경기과열과 인플레이션에 몸살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두환 정부가 들어서면서 박정희시대의 중화학공업의 육성정책을 탈피 전자산업의 육성책으로 전환하고, 1980년 당시 이미 20년 뒤에나 가능할 지하철과 버스를 연계하는 대중교통시스템과, 전자통신기술로 발생할 정보산업혁명에 대해 준비를 착실히 해나갔다. 국가 미래발전의 원동력을 IT로 삼았던 것이다.

 

당시 기계식전화기에서 전자식전화기로 전환하였고, 세계 최고수준의 전화 네트웍을 전국에 구축케 한 것도 전두환 5공정부이고, 컬러 TV 송수신을 자유화해 나갔다. 이렇게 5공정부가 구축한 정보통신 산업개발을 위한 시스템준비 착수가 계속 다음정부로 이어져 김대중 시대에 들어와서 그 위력을 실감하게 되었다.

 

아래의 자료는 [BGM주의] 전두환의 신의 한수.

글쓴이 : kazar무리뉴 | 2013.10.08. 05:06의 통계 자료를 가져왔음을 밝혀둡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르짖은 동북아 경제허브론 역시 원래는 5공 정부시절 김재익 청와대경제수석이 당시

 구상한 것이다.

 

당시 김재익 청와대경제수석이 구상한 것은 한국은 싱가폴처럼 동북아시아의 금융센터로 발돋움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김재익은 실제로 외국금융자본유치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으며, 한미은행과 신한은행의 탄생을 가져왔다. 당시 김재익은 외채, 외국자본의 도입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외채에 대해서는 대학생들의 거부 반응이 있다. 그러나 경제종속으로 망국의위기를 부른다는 논리다.

이건 잘못된 판단이다. 라고 말했었다. 한 세기 전 영국의 발전과 비교하여 절망적이라던 독일이 일어난 것은 바로 해외자본 투자 때문이다.“

 

"하나의 모델이 있다면 그건 스웨덴이다. 인구 8백만의 이 북유럽복지국가는 오랫동안 1인당 GNP 최상위 국가에 있다. 해외자본 투자 덕이다. 이 나라에서 가장 수익을 많이 올리고 있는 회사는 바로 IBM이다. 이 회사를 통해 수십 명의 최고급기술자가 배출된다. 세금도 제일 많이 낸다."

 

당시 김재익은 이중 곡가제와 같은 농촌 보조정책이 정부의 재정적자를 심화시킬 뿐 아니라, 결국 농촌을 망하게 한다고, 하루 빨리 철폐하고 농촌의 자생력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역설했었다.

 

 

 

금융 실명제 가장 처음 추진한 것도 실은 전두환 정부의 김재익 청와대경제수석이었다.

지하경제를 청산하고 깨끗한 경제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만들었던 금융실명제는 당시 대기업과 정치인 등 '비자금'을 다뤄야 하는 이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샀고, 결국 최종 달성은 좌절됐다.(그러나 이 법안은 20년 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뒤에야 실시되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제임 당시 철저한 자본주의 경제이론으로 개방과 세계화를 기조로 삼는 자유시장

제를 옹호하면서도 부의 공정한 분배에 건국 후 역대정부 중 가장 부의 공정한 분배에 기여했다.

 

 

 

1980년 이전 하위 40%의 전체 소득비율이 16.1%이었던데 반해, 1984년엔 18.9%로 향상됐다.

반대로, 상위 20%가 차지하는 소득은 1980년 45.4%에서 1984년 42.3%로 감소했다.

 

고속 성장에 물가안정. 부의공정한 분배까지. 전두환정부가 1980년대 대한민국의 경제태평성대는 당시 경제 구조조정을 통해 나라의 경제체질을 개선시키고 미래 산업동력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