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淸凉山)의 청량사(淸凉寺) 탑/사진>ⓒhttp//www.corea3000.com
옛 부터 산수가 수려한 고찰은 종교와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됩니다. 이곳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247번지에 소재하는 청량산(淸凉山)의 청량사(淸凉寺)는 거대하고, 빽빽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열두 봉우리의 연화 봉 기슭 한 가운데 연꽃처럼 둘러쳐진 꽃술 자리에 자리 잡은 사찰로서 신라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송광사 16국사의 끝 스님인 법장 고봉선사(1351-1426)에 의해 중창된 천년 고찰입니다.
●반야심경(般若心經)
아래 반야심경의 글은 http://blog.daum.net/ku6976/3126에서의 글을 필자가 일부 편집해서 옮긴 글입니다.
반야심경은 기독교의 주기도문처럼 불가에서 행하는 대표적 기도문의 하나로 짧은 글이지만 불교의 600경전을 260자로 요약한 것이라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심오한 뜻은 감히 헤아릴 수 없이 깊고 깊습니다.
그리고 반야심경 중 가장 핵심적 심오한 부분인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에 대하여 소개해 보기로 합니다.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란?
한마디로 고(苦)와 집(集)과 멸(滅)과 도(道)도 없다(無)라는 뜻으로 지혜의 눈으로 우리 인생을 관찰할 때, 삶의 근본이라고 하는 몸과 마음은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데, 그 몸과 마음을 의지하여 일어나는 온갖 고통은 아예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고(苦)의 원인도, 고(苦)가 소멸된 경지도 고(苦)를 소멸하는 방법도 있을 수 없다 했습니다. 여기서 "고집멸도"를 사성제(四聖諦)라 하는데 사성제는 불교의 중요한 근본 교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성도 후 맨 처음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사성제를 설파하셨다 합니다.
그리고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四聖諦)를 살펴보면
첫째 항목인 고제(苦諦)는 우리인생은 괴로움으로 충만 되어있다는 견해입니다.
불교는 고(苦)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고(苦)의 인식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고(苦)의 대표되는 것은 바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사고(四苦)인데, 생로병사는 누구나 겪는 피할 수 없는 고통 이지요.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과정은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일임으로, 생로병사의 사고(四苦)에 대해서는 체념해 버리는 수가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본적인 생로병사 사고(四苦)에다 다시 4가지 고통을 더하여 팔고(八苦)라 하는데 그 4가지는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온성고(五蘊盛苦)입니다.
첫째는 애별이고(愛別離苦)로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것과 헤어짐으로써 괴로운 것을 말함이고, 여기서 사랑하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라 합니다.
예를 들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내놓아야 하는 경우도 애별이고(愛別離苦)라고 해요.
자신이 애착하는 모든 것이 자기 자신과 멀어지는 상황이 되면 고통스러운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애착심이 아주 강함으로 애별이고를 사고(四苦)중 첫째에 둔 것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원증회고(怨憎會苦)인데, 자기가 싫어하는 것과 만나서 괴로운 것을 말합니다.
미운 사람과 함께 있거나 만나게 되면 괴로운 일입니다.
고로 원증회고는 사람의 관계뿐 아니라 넓은 의미로 자기가 하 기 싫은 일을 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된다 합니다. 예를 들어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기어이 맡아야 하는 경우도 원증회고라 합니다.
셋째는 구부득고(求不得苦)로서, 자기가 구하고자 하는 일을 얻어지지 않는데서 괴로운 것을 말합니다. 구부득고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은 모두 여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은데 뜻대로 안된다든지 좋은 자동차를 사고 싶고 좋은 아파트에 살고 싶어도 안 될 때, 즉 모던 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를 모두 구부득고라 합니다.
넷째는 오온성고(五蘊盛苦)로, 몸과 마음 그 자체가 하나의 고통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갑자기 삶이 귀찮아 질 때, 자신의 몸과 마음이 싫어지는 것이 바로 오온성고라 합니다.
오온(五蘊)이 치성해지는 현상은 모두 오온성고에 해당된다는 것이지요.
이상의 여덟 가지 고통 이외에도 고(苦)의 범주는 상당히 넓다고 하는데,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문제에서부터 작게는 사소한 개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는 대단히 광범위한 것이지요.
다음으로 사성제의 두 번째 항목인 집제(集諦)는 고(苦)의 원인이 되는 것인데, 즉
"집(集)" 때문에
"고(苦)"가 생기는 것으로 보는 것이지요.
"집(集)"은 '모 인다'는 뜻인데 모인다는 것은 곧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지요.
세상의 모든 문제는 모여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독립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노사(勞使)의 문제도 노(勞)와 사(使)가 모여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고, 두 손바닥이 만나야 소리가 나듯이 하나만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예로 부부 간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괴로운 것이고, 그것은 부부가 모여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즉 자기 자신과 관계가 없으면 아무런 괴로움이 발생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병들어 괴로운 것도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사대(四大)가 결합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육신은 하나로 독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많은 세포가 결합되어 있는 것이라 합니다.
세포가 관계에서 떨어지려고 할 때, 병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고(苦)"의 원인은 모여서 관계를 맺는 것에서 출발함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고"의 원인인 "집'에 대한 명확한 이해는 "고"를 제거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합니다.
사성제의 세 번째 항목인 멸제(滅諦)는 괴로움이 소멸되는 것을 말함으로, 모든 인간 행위의 목적은 이고득락(離苦得樂)에 있다고 합니다. 즉, 고통을 떠나 즐거움을 얻는 일은 불교의 목적이자 모든 종교가 지향하는 목표이지만 여기서
"멸"은 한순간 작은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탐(貪>탐욕). 진(瞋>노여움). 치(癡>어리석음) 삼독(三毒)이 완전히 소멸된 상태를 말함인 것입니다.
사성제의 네 번깨 항목인 도제(道諦)는 괴로움을 소멸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팔정도(八正道)가 있는데 이 여덟 가지를 실천함으로써 괴로움을 제거하게 되는 것이라 합니다.
팔정도는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의 여덟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정견(正見)은 바른 소견으로 존재의 실상을 바로 꿰뚫어 보는 것을 말함인데 올바로 보는 것은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것이라 합니다.
둘째, 정사(正思)는 바른 생각을 말함인데, 정견이 이루어지면 거기에서 바른 사고를 할 수 있음입니다.
셋째, 정어(正語)는 바른 언어를 말함인데, 올바른 말은 삼업 중에서 구업(口業)을 짓는 것과 연관된 중요한 항목입
니다.
넷째, 정업(正業)은 바른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 바른 행위는 신업(身業).구업(口業).의업(意業)의 삼업(三
業)을 통한 바른 업을 짓는 것을 말합니다.
다섯째, 정명(正命)은 바른 생업을 말하는 것으로 즉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바른 수단을 말함입니다.
여섯째, 정정진(正精進)은 바른 정진으로 곧 올바른 수행을 말함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거나 참선을 하더라도 바르게 행할 때 얻는 소득이 큰 것이듯, 한 가지를 하더라
도 올바른 방법으로 행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란 것입니다.
일곱째, 정념(正念)은 바른 기억을 말하는 것으로 앞에서 말한 정사와는 성격이 좀 다른 것으로 정념은 부처님 말씀
을 바르게 기억하여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진리의 가르침을 바르게 기억하여 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니까요.
여덟째, 정정(正定)은 바른 명상을 말합니다.
정정은 올바른 삼매를 말한다 합니다. 앞의 일곱 가지가 실천에 행해질 때 이루어지는 최상의 단계라 합니다.
이상의 팔정도는 이 세상에 널려 있는 많고 많은 고통들을 소멸하는데 있어서 가장 올바른 길이며 팔정도를
실천 수행함으로써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반야심경>에서 사성제를 "무"라고 하듯 사성제의 근본을 따져서 분석해 보면 그 근원이 공이기 때문에 "무 고집멸도"인 것이지요.
사성제의 가르침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그 본질은 공 이기게
"무"인 것이랍니다.
결국 존재의 실상을 바로 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온개공(五蘊皆空)"은 고(苦)도 없는 것을 말함으로 자기 자신이 있다고 하는데서 고(苦)가 생기는 것이지 자기 자신이 없다고 하면 고(苦)는 없는 것이라 했습니다.
"오온개공 도일체고액(五蘊皆空 度一切苦厄 )" 즉 일체의 모든 고통을 모두 건너가 버렸기 때문에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가 되는 것 이라내요.
반야심경에서는 사성제를 있는 것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한 차원을 달리해서 그것 또한 텅빈 것으로 보라는 것이며 결국 사성제조차도 매달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고집멸도"의 사성제를 수없이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반야심경>에서는 한 순간에 "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차원을 달리한 경지이며 이런 경지를 뛰어 넘을 때, 공부의 진척이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달을 보더라도 어릴 때 보는 것과, 청년시절에 보는 것과, 노년이 되었을 때 보는 것이 다르듯이 같은 대상이지만 차원을 달리한 견해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존재의 실상이 공(空)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사성제의 견해도 서론에서 언급한 유와 무와 성(性)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유의 입장은 그래도 "고집멸도"가 있다는 견해이고, 무의 입장은 "무고집멸도"가 되는 것이지요.
또한 성의 차원에서는 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가 되는 것이며,
다시 말해서 "고(苦)" 그대로가 성스러운 진리라는 견해가 되는 것입니다.
<반야심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공(空)의 이치는 부정을 넘은 부정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정의 부정은 다시 강한 긍정이 되니 말입니다.
< 반야심경>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무"를 통한 강한 긍정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미력하나마 배우고 익히고 다듬어 무딘 머리를 씻어 보기로해요
<언제나 기쁨주는 산적 : 조 동렬(일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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