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타/그때 그시절

옛 중앙청 건물

야촌(1) 2019. 6. 23. 14:32

옛 중앙청 건물

 

[사진자료]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의 국권피탈과 함께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한 후 피 점령지에 대한 점령국의 모던 것을 총괄 관장하는 기구를 설치하기 위해 경복궁 일부를 헐고 이곳에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청사를 설치하였다.

 

1945년 일본이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大東亞戰爭,1941년부터 1945년 까지 일본과 연합군 사이에 벌어진 전쟁)에서 패망함에 따라 이 땅에 미군정이 들어서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됨으로서 중앙청(中央廳), 그 후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우리사회의 사상적 대립, 남북문제(좌우대립), 동서 문제는 일제 식민지역사에서 그 깊은 뿌리가 있다. 본 자료는 참고용으로 정리해 둔다. 서울포스트 자료 및 인터네 등 불특정 일부자료를 차용했으며, 저작권이 있는 분은 메모 남겨 주시면  바로 잡겠습니다.

 

↑경성을 감시하는 조선총독부 공사현장(1916년 6월)

1916년 일제가 식민 통치의 위엄을 세우기 위하여 경복궁 일부를 흘고 조선 총독부 건물을 건축하여 사용하게 된다.

8.15해방후 미군정시대는 군정청으로 사용하면서 이때부터 중앙청이라 불리기 시작하였다.

 
1900년부터 1910년대 서울에는 대형 건축 붐이 일었다. 이 시기 식민통치와 관련된 관공서 건립이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1910년에 기공, 준공된 신축청사 또는 증축청사만 하더라도 139동이었다. 조선 통치의 거점 확보와 식민지 통치기관의 건설을 두고 일제는 식민지의 문명개화라고 추켜 세웠다.

일본 본국의 관청양식을 따라 특히 조선인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 건물의 위세를 강조했다. 이 때문에 일본의 건축양식과 서양의 그것을 절충한 이른바 왜양절충식의 르네상스식 건축이 유행했다. 조선총독부와 경성부 청사를 중심으로 일제의 관공서가 모든 조선적인 것을 억누르고 서 있지 않은가. 조선총독부 청사 신축은 대역사였다.

공사에 투입된 철근을 이으면 그 길이가 총 1,320리로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길이를 훨씬 넘는다. 사용된 시멘트 62,000통을 한 줄로 쌓아올리면 그 높이가 34.091m라고 하니 한라산 높이의 18배에 해당한다. 그러나 낮은 임금 지급으로 건축비는 일본에서보다 훨씬 적게 들었다.

 

 

 

 

 

 
 

↑광화문을 철거하는 광경(1926년)

 

1926년 7월 22일. 드디어 조선의 명운이 바닥에 떨어졌고, 지하세계에서 모든 선조들의 혼령

일어나 통곡을 한다. 바로 광화문 철거작업이 시작됐다. 1927년 건춘문(建春門) 북측(지금

의 민속박물관 입구)으로 옮겨지게 된다.

↑1951년 한국전쟁 직후 경복궁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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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한국전쟁 직후 경복궁 전경

 

 

 

 

↑로마 바티칸 시티 '성 베드로 대성당' 돔. 미국 의사당 건물도 이와 비슷하다. ⓒ자료
 
궁궐내에 일제 총독부가 들어섬으로 경복궁 전각 19채,대문 중문 22개,당 45개 등 궁궐 내부의 여러 건물들을 다 해체하고 근정전과 경회루 만 남겼다.
 
※ 조선총독부 건물은 당시 동양 최대 근대식 건축물로 1912년 독일인 게오르그 라란테 설계, 1916년 착공, 1926년 완공. 1945년 해방후 미군정 청사, 1950년 6.25직후 서울이 함락되어 조선인민군 청사, 그해 9.28 서울 수복, 1962년 대한민국 중앙청(정부 청사), 1986년 국립중앙박물관, 김영삼 대통령 때 1995.8.15 철거 시작, 1996년 철거완료 후 부분 잔해는 천안 독립기념관에 전시.

 

 [서울포스트 온라인팀] 우리 역사서에 보면 ㅇㅇ도독부, ㅇㅇ도호부, ㅇㅇㅇㅇ통감부, ㅇㅇ총감부 라는 사무소 이름이 제법 나온다. 피점령지에 설치한 점령국가 파견 기구로, 그 지역 모든 것을 총괄관장한다. 일제가 1910년 조선을 강점하고 경복궁 일부를 헐고 설치한 것이 조선총독부다.
 
설날 경복궁과 한국은행 앞을 거닐며 새삼 그 자료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모아본다. 사진은 독도카페에서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글쓴이 : Goodies]의 글을 스크랩 한 것, 네이버 불로그 [머찐만두 (cms1530)] 등을 참고했다.

심하게 불균형을 이룬 사진의 수평은 서울포스트 가 맞췄으며, 크기는 (화질이 중요하지 않아) 줄이거나 늘려 가로 600픽셀로 통일했다. (저작권이 있는 이미지는 메모 남겨 주십시오.)
 
[조선총독부 청사]
 
1910년 8월 29일 국권피탈과 함께 서울에 설치,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까지 한국을 식민통치하다가, 1945년 9월 9일 정식항복조인식까지 존속하였던 일제 침략기관. 1912년 경복궁 내에 새로운 총독부 청사를 짓기로 결정, 설계는 독일인 게오르그 라란테. 1916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26년에 완공했다.

건축양식 면에서는 르네상스 양식과 고딕 양식을 융합한 신고전주의(Neo-classic) 양식을 택해, 총독부 돔은 이탈리아 성 메드로 대성당의 돔(이탈리아 로마-바티칸 시티, 르네상스 건축물, 미켈란젤로), 미국 의회 의사당 돔과 흡사하다.

 

사진 1995년 여름

 

정부가 수립된 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을 집무실로 사용했고 6.25전쟁 때 건물이 일부

파괴되기도 했지만 5.16 군사정부에의 복구 공사로 수리하여 국무 총리실을 비롯한 정부의

중앙 부처 청사로 사용 되었다.

 

 

↑옛 중앙청과 광화문전경(1993년. 9월)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세우기란 정책 일환으로 1995년 8월 15일 광복 50주년 기념 행사를

기해 참석한 광복회원. 해외동포. 각계 대표인사. 일반시민 등 5만 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중

돔 상부 첨탑(尖塔/spire) 철거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중앙청 옛건물이 해체되기 시작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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