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의 개념 기원과 유입
족보는 한 씨족[同族]의 계통을 기록한 책으로, 같은 씨족의 시조로부터 족보 편찬 당시의 자손까지를 수록의 대상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씨족은 성(姓)과 본관(本貫)이 같아 동조의식(同祖意識)을 가진 남계 친족을 가리키지만, 실제로 족보에는 친계와 외계가 대등하게 다루어지는 경우가 흔하며,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이후가 되어야 부계친 중심의 편제가 확고하게 자리 잡는다.
족보의 기원은 중국 한나라 때로 소급된다는 견해가 있으나, 이규경(李圭景,1788~1863)은 진나라[기원전 221년~기원전 206년] 지우(摯虞)가 만든 《족성소목기(族姓昭穆記)》를 족보의 효시로 보았고,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 보계편(譜系篇)》에도 익주(益州)와 기주(冀州) 등 여덟 고을의 성보(姓譜)가 소개되어 있다.
이후 송나라 구양수(歐陽脩,1007~1072)와 소순(蘇洵,1009~1066)이 비로소 소종법(小宗法)에 근거하여 족보를 편찬함으로써 보학의 지침으로 확립되어 갔다. 특히,《미산소씨족보(眉山蘇氏族譜)》는 서문이 명문이기도 하거니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족보의 고전이자 전형으로서 확고부동하게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족보는 중국문화의 확산과정에서 인근 국가로 전파되었다. 우리 나라는 고려 중엽부터 광의의 족보가 있었다고 알려지며, 중국의 ‘종보’(宗譜), 월남의 ‘가보’(家譜) 와는 달리 ‘세보(世譜),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족보를 조사․ 분석한 최재석(崔在錫)의 연구에 따르면, 족보와 관련된 명칭은 무려 60여종에 이르는데, 이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세보(世譜), 족보(族譜), 파보(派譜), 가승(家乘), 세계(世系), 속보(續譜), 대동보(大同譜), 가보(家譜), 가승보(家乘譜), 계보(系譜), 보(譜), 자손보(子孫譜), 대보(大譜), 세적보(世蹟譜), 종안(宗案), 세덕록(世德錄), 소보(小譜), 지장록(誌狀錄), 선원보(璿源譜), 수보(修譜), 약보(略譜), 문헌록(文獻錄), 실기(實記), 가사(家史), 총보(總譜), 선보(璿譜), 연원보(淵源譜), 화수보(花樹譜), 녹권(錄卷), 분파지도(分派之圖), 통보(通譜), 가첩(家牒), 소원보(溯源譜), 연보(年譜), 완의문(完議文), 전보(全譜), 지보록(支譜錄), 세헌록(世獻錄), 대종보(大宗譜), 파록(派錄), 세기(世紀), 대동종보(大同宗譜), 세승(世乘), 세가(世家), 외보(外譜), 경편보(輕便譜), 세첩(世牒), 구보(舊譜), 삼응보(三應譜), 보계(譜系), 세고(世稿), 종표(宗表), 가장보(家藏譜), 일통보(一統譜), 파첩(派牒), 실록(實錄), 외계(外系), 세감(世鑑), 회중보(懷中譜), 파별록(派別錄), 분가보(分家譜), 세적(世蹟) 등 이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세보․족보․파보가 전체의 80퍼센트를 차지한다.
다만, 현재 우리는 족보․가승․가첩 등 족보류의 명칭들을 아무런 구별 없이 쓰고 있지만 우리 조상들은 용어를 엄격하게 가려 썼다.
① 예로부터 사대부의 족(族)에는 보(譜)가 있고, 가(家)에는 승(乘)이 있었다. 보는 그 계통을 밝히는 것이요, 승은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니, 이 두 가지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李圭景, {五洲衍文長箋散稿} 人事編 氏
姓)
② 외손과 지파의 번성함이 본종(本宗)을 능가하는데, 지금 만약 나라의 보례(譜例)에 따라 빠짐없이 아울러 기록
하게 되면 고열하기가 불편할 뿐만 아니라 경중의 차별 또한 없게 되므로 이번에는 이들(외손)을 수록하지 않고
‘동성보’(同姓譜)라 한다.(李士溫編, [(廣州)李氏同姓譜](1610: 庚戌譜) 凡例)
①은 보(譜)와 승(乘)의 개념에 대해 말한 것이고, ②는 족보라 하지 않고 동성보라 이름 한 사유를 밝힌 것이다.
이로부터 114년 뒤인 1724년(경종 광주이씨족보(갑진보)의 편자는 범례에서, 경술보와 달리 갑진보를 족보
로 이름 붙인 까닭을 아래와 같이 밝혀 놓았다.
경술보에서는 외손을 수록하지 않아 ‘동성보’라 했는데, 지금은 외손까지 수록했으므로 ‘족보’라 한다. 이것은 적어도 족보 편찬에서 ‘족’(族)의 개념 속에는 친외(親外) 양계의 의미가 함께 들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사며, 족보의 명칭과 관련해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와 관련하여 박세당은 1683년(숙종 9) 박세채(朴世采) 등이 발간한 세보의 서문에서, 그 족(族)을 계통에 따라 기록한 것을 족보라 하는데, 이것은 박씨의 족을 기록한 것이면서도 어찌하여 족보라 하지 않고 세보라 하였는가?
이는 세(世)로써 그 족(族)을 계통 지었으므로 세는 말하되, 족은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朴世堂, 西溪集 卷7, 潘南朴氏世譜序)라고 하여 족보와 세보의 차이를 말하였다.
필자 역시 박세당이 말하는 족(族)과 세(世)의 개념 차이가 분명하게 파악되지는 않지만, 세보와 족보는 엄연히 달랐음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서 각 명칭의 개념과 차이를 일일이 거론할 수는 없지만, 계보학 연구는 이러한 근원적인 의문에 대한 해명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음을 제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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