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타/이재정(李在禎)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그는 어떤 삶을 살았나?

야촌(1) 2014. 6. 5. 02:58

경기도교육감 이재정, 그는 어떤 삶을 살았나?

 

경기eTV뉴스 2014년 06월 05일 (목) 02:09:05 권오규 기자 kgetv@naver.com

6.4 지방선거에서 조전혁 후보를 물리치고 경기교육수장의 자리에 오른 이재정

 

경기고와 고려대를 졸업한 이 후보는 성공회사제, 성공회대총장, 16대국회의원,

참여정부통일부장관을 역임했으며 노무현 재단이사, 성공회대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 이재정(李在禎)의 삶

↑경기중학교 제학 시절
 
1944년 3월 1일 충남 입장에서 출생하여 부모님의 고향인 충북 진천에서 성장하였다. 

진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1956년부터 서울에 유학하여 경기중학교를 거쳐 경기

고등학교를 1962년에 졸업하였다.

 

 

1962년 고향에서 (관인)신명학원을 설립하여 중학교 진학을 못한 학생들을 위한 무상 중등과정교육을 3년간 운영하였다. 1965년 뒤늦게 고려대학교에 진학하여 1969년 2월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스승과 주변의 권유로 성공회 성미가엘 신학원에 입학하여 3년간의 교육과정을 마친 후 1972년 대한성공회 사제가 되었다.

마침 유신 쿠데타가 일어난 직후였기 때문에 유신반대 투쟁에 참가하면서 교계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교회와 사회위원회 및 인권위원회 임원 그리고 한국기독학생총연맹의 이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민주화와 사회정의 그리고 인권회복을 위한 활동에 헌신하였다.
 
1982년에 강화교회에서의 목회를 끝으로 캐나다에 유학하여 매니토바대학교 대학원, 토론토대학교 트리니티대학 대학원에서 종교학 석사와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88년 귀국하였다.
 
귀국이후 신영복 교수, 조희연 교수 등과 함께 성공회대학교를 세워 가는데 헌신하였으며 1994년에는 초대 총장이 되었다. 당시 성공회대학교가 역사와 사회에 열린 대학으로서 새로운 변화와 대안을 창출하는 진보적 학문을 이룩하기 위하여 진보학문의 학파를 만드는데 진력하였다.

이 시기에 한국기독교회협의회 통일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1989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열린 남북교회 및 세계교회대표들이 참석하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협의회에 참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워싱턴, 토론토, 동경 등지에서 열린 기독교계의 남북회담에 한국대표로 참가하였으며 민간단체인 남북농업발전협력협회의 이사장으로서 남북관계 발전에 기여하였다.

 

↑신학생 봉사활동(1972년 9월)
 
1998년 7월에는 서울시노숙자대책협의회 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당시 외환위기로 맞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 노숙자가 된 사람들에게 희망과 미래를 열어 사회에 복귀하는 운동을 벌였으며, 같은 해 8월에는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999년 5월에는 대통령 직속 사법개혁추진위원에 임명되어 6개월간 사법개혁추진계획을 성안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리고 1999년 3월에는 (사)국민정치연구회 이사장에 선임되어 새로운 정치를 이룩하기 위한 시민단체의 대표가 되었다.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 새로운 국민정당을 창당하기 위한 신당추진위원회의 총무위원장으로 참여하여 2000년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하고 초대 정책위원회 의장을 역임하였다. 제16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교육위원회 간사로서 교육개혁과 정치개혁에 기여하였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를 위하여 후보 경선과정부터 참여하여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유세연수본부장으로 활동하였다. 2003년에는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총무위원장으로서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데 중심 역할을 하였다. 2004년에 대통령선거과정에서 불법 선거자금을 전달했다는 죄목으로 기소되어 벌금형의 유죄판결을 받기도 하였다.
 
그 후 2004년10월 24일에는 대통령을 의장으로 하는 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에 임명되어 2006년까지 평화통일운동의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2006년12월 11일에 제33대 통일부장관으로 임명을 받아 중단되었던 남북장관급 회담을 재개하는 한편 남북철도를 개통하고 열차 시험운행은 물론 남북열차정기운행을 이룩하는데 주무 장관으로서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2007년10월 열린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남북정상회담 준비 기획단장으로 정상회담의 준비과정부터 정상회담 진행과 배석 및 정상회담의 후속조치에 이르기 까지 전반적인 실무를 책임지고 총괄하였다. 장관으로 재임하는 동안 남북관계는 모든 기록을 경신하여 금강산 관광, 개성관광, 개성공업지구의 활성화와 남북경협의 확대 등 모든 분야에서 큰 진전과 발전을 이룩하였다.
 
정권교체로 2008년 2월말 정부에서 물러난 후 노무현 대통령의 뜻으로 설립한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이사장, 노무현 재단 이사 등을 역임하였고 정치적으로는 2010년 국민참여당의 초대 대표 등을 맡으면서 새로운 정치 개혁과 참여정치의 역사를 만드는데 기여하였다.
 
현재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들을 위한 연구와 교육에 열중하는 한편, 노무현재단 10.4남북정상선언기념특위 위원장, (사)코리아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그리고 지난 수년전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강화유치원의 법인인 (재)심도학원 이사장, 청소년다언어훈련과 국제 교환 수련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한국라보의 이사장과 청소년단체협의회 이사, 그리고 독립운동가 보재 이상설을 기념하는 (사)이상설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리고 현재 (협)은빛기획의 이사장으로서 노년의 삶을 위한 프로그램과 자서전 출판사업을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