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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선생 초상

야촌(1) 2014. 2. 25. 21:46

작가 : 이유태(1916~1999) 作 / 지본 담채, 50×70cm

 

■ 퇴계선생초상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퇴계선생의 초상이다.

 

위는 최근에 새로 발행한 1000원 권인데 그 전에 쓰던 1000원 권의 초상과 다르지 않다. 이 작품은 1974년 이유태 화백이 그린 상상화로 많은 논란을 빚어 왔다.

 

아래 초상은 진성이씨(眞城李氏) 대종회에서 발간한 <열화(悅話)> 제20호의 2005년판에 실린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선생은 평소  "털 하나라도 틀리면 나의 진면목이 아니다."라는 태종이래의 말씀을 하신 바 있으며, 진영은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생의 용모를 짐작할 수 있는 기사로는 <퇴계선생언행록> 잡기19칙 제1에 「선생, 안각풍광(顔角豊廣), 송재기애지(松齋奇愛之), 상호왈(常呼曰), 광상(廣桑+頁, 이불명언(而不名焉)」(이안도 (李安道)선생, 퇴계선생언행록에서)

(선생은 이마가 모가 나고 풍성하게 넓어서, 송재(松齎: 숙부)께서는 이를 기이하게 여기고 사랑하여, 평상시에 부르시기를 광상(廣桑+頁:넓은 이마)이라 하시고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였다.)라는 기사가 올라 있다.

 

그런데 지난해 혜산(蕙山) 유숙(劉淑)이 이모(移模本)로 그렸다고 명기된 "퇴계선생 진영"이 발견되었다.

유숙은 마지막 어진 화가로서 오원 장승업의 선생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지금까지는 시대적으로 가장 오래된 진영이며, 그 기품은 기고봉(奇高峰: 기대승)이 언급한 바와 같이「선생기품영오(穎悟), 천자독실(天資篤實)>선생은 기품이 영오하고 천자독실 하였다」라는 기사에 가장 근접하고 있다.

 

두 사람(유숙과 이유태)의 시간차는 대략 150년 이상 되는 것 같고, 퇴계의 제자이자 12년을 교유하고 8년을 四端七情을 주제로 논란을 펼쳤던, 기대승선생의 언급에 가장 근접한 영정이 발견되었다니, 이를 엄밀히 검증하여 새 지폐에 실음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퇴계는 손자 안도(安道)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린 손자를 구하기 위해 거느리고 있던 여종을 불러올리는 것은 그 종의 어린 자식까지 죽이는 일임을 지적하며, 두 아이를 모두 살리는 방법을 제시한 것을 보면 인도주의의 실천자로서의 면목도 볼 수 있는 훌륭한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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