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판윤과 공조. 예조판서를 지낸 이집두(李集斗), 1744년(영조 20)∼1820년(순조 20) 선생이 1818년(순조 18)에 쓰신 서간문(書簡文)입니다. ↑크기 : 가로 42.3cm×세로 35cm 상태 ● 파서 이집두(琶西 李集斗), [생졸년] : 1744년(영조 20) 3월 23일생∼1820년(순조 20) 12월 30일 졸 조선후기의 문관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중휘(仲輝), 호(號)는 파서(琶西) 또는 구학(臞鶴). 좌의정(左議政) 경억(慶億)의 현손으로, 서사 감역(筮仕監役) 진원(進源)의 아들이다. 1774년(영조 50)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한림에 들어갔다. 이어 대사간(大司諫 : 正三品) · 대사헌(大司憲 : 從二品) 과 외직으로 안동부사, 1798년(정조 22) 함경도관찰사(咸鏡道觀察使-從二品)가 되어 변방의 야인을 잘 다스렸고, 1800년(정조 24, 순조 즉위) 주청부사(奏請副使)로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순조가 즉위하자 한성판윤(漢城判尹-正二品), 공조판서(工曹判書 : 正二品)· 예조판서(禮曹判書 : 正二品)가 되고, 1810년 동지사(冬至使)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다.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 : 從一品)로 치사하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었다. 당대 글씨로 유명했다. 경주이씨 시조 탄강 유허비(始祖 誕降 遺墟碑) 및 구강서원 강당기(龜岡書院 講堂記)도 선생의 글씨이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純祖實錄 ◇國朝榜目 ◇慶州李氏金石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