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조유적. 유물

승지공 두곡 이발 묘(丞旨公 杜谷 李渤 墓)/25世

야촌(1) 2011. 4. 25. 23:48

■ 좌승지 이발(左承旨 李渤 : ? - 1560년 음 10월 5일)

 

재사당 이원의 아들(再思堂 李黿의 子)로 배위(配位)는 광주이씨 굉필의 녀(廣州李氏 宏弼의 女) 문첨추 여산 송침의 외손(文僉樞 礪山 宋沈의 外孫)으로 묘는 합폄(合窆)이다.

묘(墓)의 소재지 : 충북 제천시 송한면 송한리 癸坐 墓碣銘 有(梧村公後 文熙 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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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학(松鶴)땅 송한리(松寒里)의 계좌(癸坐)에 앉은 무덤은 공(公)의 유택(幽宅)이요.

청룡(靑龍) 학봉(鶴峰) 월악(月岳) 용두산(龍頭山) 들녘!

 

산이 아름답고, 물이 맑은 궁벽(窮僻-외로히 따로 떨어져 구석지고 몹시 으슥함)하여 사람의 왕래가 드문 그윽하고 조용한 곳이어라.

 

서울서 아득히 먼 초목이 우거져 햇빛이 잘 보이지 않는 궁벽한 산골인데,

서울을 버리고, 멀리 찾아와서 작은 아버지의 뒤를 이었네.

 

집안이 화난(禍難)을 당한 나므지 세상에 나설 뜻을 버렸고,

이름이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고 세상을 피해 자취를 감추고 살았도다.

 

타고난 덕을 닦고, 스스로 깨끗이 절개를 지키니 사람마다 우러러 보며,

감히 이름을 부르지 못하였네.

 

두곡(杜谷)이라 불러 그대로 공(公)의 호(號)가 되었으니,

깊고 험한 골짜기에서 두문불출(杜門不出) 함을 영유한 칭호였도다.

 

푸른 솔에 학(鶴)이 앉은 모습은 공(公)의 모습이요.

솔은 추울수록 더욱 푸르름은 공(公)의 지조일레라!

 

세상을 피해 살며, 말없이 지냈으되 어찌 답답하고 억울함이 없었으랴.

소쩍새가 그 아픔 어루만지며, 위로하여 밤새워 울어대네.

 

번거로운 세상사 잊고, 관계하지 않았기로 상자속엔 필적하나 남김이 없어

자(字)도 생신(生辰)도 전하지 않으니 알 길이 없어라.

 

공(公)의 삶은 비록 불운했건만 음덕(蔭德)은 실로 후하게 일어나서

재주가 뛰어난 자손들이 연속하고 있음을 먼 후손이 울며 기리도다.

 

1992년 4월

후손 오촌공후(梧村公後) 문희(文熙)가 글을 짓고,      

후손 남계공후(南溪公候) 상묵(相默)이 글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