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역대 대통령 자료

전두환 전 대통령 회고록 「말 못한 역사」미리 짚어보기

야촌(1) 2010. 11. 10. 01:54

↑전두환 전 대통령 공식 초상화

 

일요시사> 뉴스홈>뉴스 >정치 l 등록날짜 : 2010년11월09일 09시38분

12·12, 5·18…‘역사의 진실’ 이제는 말할 수 있을까?

전두환 전 대통령회고록 ‘말 못한 역사’ 미리 짚어보기

 

12·12, 5·18, 최규하 하야 진실 담았나
거물급 정·재계 인사들 막후 ‘비사’ 주목

 

전두환 전 대통령이 연말 회고록 출간을 앞두고 있다.

연말 출간 소식만 전해졌을 뿐 출판사와 대필 작가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중이다.

 

하지만 정가는 벌써부터 전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실릴 내용을 점쳐보느라 부산하다.

현대사의 중심에 서 있었던 만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의 진실’이 그의 입을 통해 전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출간을 하기도 전에 만만찮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 중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내지 않은 이는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진실이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품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전 전 대통령은 1980년대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1931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그는 대구공업고등학교를 거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1959년 부관학교를 거쳐 미국 유학을 떠났으며 1960년 미국 육군보병학교를 수료하고 1965년에는 육군대학교를 졸업했다.

 

말 못한 역사의 진실

회고록서 밝혀질까

 

1961년 5·16군사쿠데타 직후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 민원비서관을 지냈다. 이후 중앙정보부 인사과장, 육군본부 수석부관을 역임했다. 1970년 베트남전쟁에 참전했으며 1971년 제1공수특전단 단장, 1976년 청와대 경호실 차장보를 거쳐 1978년 제1사단장을 지냈으며 이듬해에는 국군 보안사령관에 임명됐다.

 

그해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12월12일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으로서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체포하고, 신군부가 12·12 군사정변을 일으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와 함께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강제 진압하고 정권을 장악했으며, 그해 6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상임위원장이 됐다.

 

이어 8월 5일 대장으로 진급하고, 22일 예편,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선으로 제11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1981년 1월 창당된 민주정의당의 총재가 돼 2월 개정된 새 헌법에 따라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1988년 2월24일 제5공화국 재임 7년의 단임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다.

전 전 대통령은 이처럼 굴곡 많은 시간을 지나왔다.

 

때문에 그의 회고록 중 주를 이룰 부분도 그가 박 전 대통령에게 발탁됐을 때부터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부분이 될 것이라는 게 정가 인사 대다수의 견해다.

 

특히 전 전 대통령의 인생은 물론 한국 현대사에도 중요한 ‘순간’으로 기록된 12·12 군사 정변,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올해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이자 전 전 대통령이 12·12와 5·18을 거쳐 최고 권력자가 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인 만큼 회고록에서 12·12와 5·18이 차지하는 비중이 클 것으로 보는 것이다.

 

전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서 물러난 후 5·18과 5공 비리 문제에 대한 책임을 추궁 받았다.

1995년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구속 기소돼 1심에서 내란죄 및 반란죄 수괴 혐의로 사형,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것.

 

1997년 4월17일 대법원은 12·12 사건은 군사쿠데타로, 5·18 사건은 내란으로 확정 판결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5·18은 전두환 일당이 12·12 군사반란을 통해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 최규하 대통령을 위압해 권력을 행사하면서 내란을 목적으로 광주학살을 자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죄에 대해 시인한 바 없다.

 

그는 이신범·이택돈 전 의원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의 소에 대해 “대한민국의 절체절명의 위기상황 속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계엄 하에서 국가 각 기관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그 시대의 국가적 위기극복 노력을 시대적, 정치적 상황이 바뀌었다고 하여 불법으로 매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라는 내용의 답변서를 제출했다. 스스로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만큼 자신으로 인해 죽거나 다치는 등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도 사죄하지 않았다.

 

진짜 진실은 무엇?
‘청와대 자료’로 살아날까

 

때문에 이번 회고록 출간을 앞두고 12·12와 5·18에 대한 진실을 기대하는 이들이 상당하다.

특히 5·18은 발포 책임자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몇 명이 숨졌는지 등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끝나지 않은 역사’다.

 

또한 전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발간되면 지난 1980년 최규하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선출됐다 스스로 물러난 것이 자의였는지, 신군부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풀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6년 10월 전 전 대통령은 최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은 자리에서 “10·26 사태 이후 고인은 대통령이었고 나는 합동수사본부장이었는데 10개월 동안 대통령으로 모셨다”며 “그러다 12·12 사태가 나고 나한테 대통령 권한이 옮겨졌다”고 회고했다.


또한 그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는 전직 대통령들과 거물급 정·재계 인사들에 대한 평가와 숨은 이야기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판장 모습

 

이어 “고인은 섬세하고 꼼꼼한 성격이라 (당시 상황에 대한) 모든 것을 기록해 놨을 것”이라며 “고인의 비망록이든 회고록이든 발표되면 국민들이 궁금해 했던 점이 밝혀질 것이다.

(최 전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난 힘없는 대통령이었는지, 아니면 신군부에 항거하다 어쩔 수 없이 밀려난 비운의 대통령인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4년이 지난 후인 지금까지 출간되지 않았다.


최 전 대통령은 10·26 사태부터 12·12, 5·18을 거쳐 대통령 하야까지 격동의 정치를 경험했고, 이와 관련된 수많은 의혹이 제기됐지만 끝내 입을 다물었다.

전두환 정권이 막을 내리고 5·18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청문회에서 진실을 밝힐 기회가 있었지만 끝내 증언을 거부하고 모든 것을 무덤까지 안고 간 것이다.

이 때문에 최 전 대통령이 밝히지 않은 역사의 한 조각을 전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통해 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전 전 대통령의 증언이 ‘진실’과 가깝겠냐는 것이다.
전 전 대통령에게는 이미 ‘황강에서 북악까지’라는 전기가 있다.

 

이는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군인으로 성공하고 집권을 하기까지의 세월을 미화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회고록에서도 전 전 대통령의 시각으로 본 역사만이 기술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는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군인으로 성공하고 집권을 하기까지의 세월을 미화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회고록에서도 전 전 대통령의 시각으로 본 역사만이 기술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번 회고록은 이것이 바탕으로 쓰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담길 ‘사람들’에 대한 부분도 관심거리다. 전 전 대통령은 이번 회고록에서 최규하·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 등 현대 정치사의 중심에 섰던 거물급 정치인들에 대한 아낌없는 ‘인물평’과 공개되지 않았던 다양한 ‘뒷이야기’를 담을 것으로 전해진 것.

 

최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12·12 사태로 인해 8개월여 만에 하야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는 육사 11기 동기생인 친구 사이로 12·12, 5·18을 거치며 차례로 대통령직에 올랐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자 전 전 대통령은 친구였던 노 전 대통령에 의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지 9개월 만에 백담사로 유배되는 등 적지 않은 굴곡을 겪어야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는 사연이 더 깊다. 김 전 대통령이 ‘역사 바로 세우기’의 대상으로 전 전 대통령을 겨냥하면서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야 했던 것.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이미 오래전에 ‘화해’를 한 사이다. 지난해 8월 김 전 대통령을 문병하고 조문하며 화해를 이룬 것. 전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팔순 잔치에 동교동계 핵심 인사인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과 남궁진 전 문화관광부 장관을 초대하기도 했다.

 

이 밖에 전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는 현재 활동 중이거나 뒤로 물러나 있는 정·재계 거물급 인사들에 관한 막후 비사들도 포함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말하는 ‘사람’
정·재계 거물 뒷얘기

 

전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실릴 것으로 기대되는 것에는 ‘비자금’에 대한 부분이 빠지지 않는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 1988년 11월23일 대국민 사죄와 함께 재산헌납을 발표하고 백담사에 은둔했다. 당시 그가 ‘전재산’이라고 밝히며 헌납한 재산은 현금과 금융자산 162억원, 연희동 자택을 포함한 4건의 부동산, 2건의 골프회원권 등이었다.

 

하지만 지난 1994년 서석재 총무처 장관과 1995년 박계동 의원에 의해 비자금 조성 의혹이 제기됐으며 대법원에서 2205억원의 추징금을 최종 선고받았다. 전 전 대통령은 이중 자진 납부나 강제 집행을 통해 530여 억원을 변제했으나 아직까지 1672억원을 미납한 상태다.

 

지난 2003년 6월 “예금 29만원이 전 재산”이라고 했으나 2004년 서울 강남의 서초동 땅 51평을 압류 당했고, 2008년엔 은행 채권 추심을 통해 4만7000원을 징수 당했다. 최근에는 대구지역 강연에서 발생한 소득이라며 추징금 300만원을 납부했다.

 

있는 돈을 모두 추징금으로 냈다는 전 전 대통령의 주장대로라면 그는 ‘동전 한 푼’ 없이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 6월 전북 무주리조트 내 골프장에서 가족 및 측근과 골프를 치는 모습이 목격되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역사와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수많은 의혹이 회고록을 통해 모두 풀릴 수 있을까. 전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모든 것을 내보일지, 그럴싸하게 포장된 것들을 내보일지 ‘전두환 자서전’의 출간에 정가 안팎의 시선이 고정되는 이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