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고려와조선관직

대제학(大提學)의 위상(位相)

야촌(1) 2010. 11. 1. 16:30

■ 대제학(大提學)

 

조선시대 홍문관(弘文館),예문관(藝文館)의 최고 책임자로,정2품직의 전임직(專任職)이 아니라 타관(他官)이 겸임하는 겸직(兼職)이다.

 

관직은 둘이지만 실제로는 한사람이 두 관서(官署)의 대제학(大提學)을 겸하는 것이 상례였으며,국가의 모든 문한(文翰)을 장악하여,사령(辭令),과거시험(科擧試驗)등을 통괄하고,학문과 관계되는 제반 일을 관장하였다.

 

대제학(大提學)은 정2품(正二品)의 관계이지만,학문(學文)과 도덕(道德)이 뛰어나고,가문(家門)에도 하자가 없는 석학(碩學),석유(碩儒)만이 오를 수 있는 지위로,정승(政承) 3명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학자(學者)와 인격자(人格者)로 서의 최고 지위라 할수 있어,본인은 물론,일문(一門)의 큰 명예로 여기었다.

 

대제학(大提學)후보 선정은 전임 대제학이 후보자를 천거하면 이를3정승(三政承),좌우찬성(左右贊成),좌우참찬(左右參贊),육조판서(六曹判書)가 모여 다수결로 정하게 된다.

 

대제학(大提學)의 임기는 본인 의사에 따라 결정하며,종신직(終身職)이었다.

이와 같은 위상으로 볼 때,관직중에서 최고의 꽃이라 말할수 있다.

 

또한 대제학(大提學)을 온 나라의 학문을 바르게 평가하는 저울 이라는 뜻으로,「문형(文衡)」이라고 평가되기도 한 대제학(大提學)을 학문의 권위가 높다고만 해서 오를수 있는 관직은 아니었다.

 

원칙적으로 문과(文科)의 대과(大科)급제자이면서도 임금의 특명을 받아 문신(文臣)들이 공부하던 호당(湖堂)출신만 가능하였고,또한 문형(文衡)의 별칭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는데,반듯이 홍문관대제학(弘文館大提學)과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및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지성균관사(知成均館事)등,나라 전체의 학문관련3가지 최고 직위를 모두 겸직하는 경우에 한하였다.

 

문형(文衡)이란,이러틋3관의 최고 책임자로서,관학계(官學界)를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직위 이므로 학자로서의 최고의 명예(名譽)로 여겼으며,품계((品階)는 판서(判書)와 동등한 정2품(正二品)이지만3정승(三政承)이나,육조판서(六曹判書)보다도 높이 예우(禮遇)를 하였다.

 

- 이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