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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적(李興啇)

야촌(1) 2010. 9. 4. 07:01

■ 20世 이흥적(李興啇)

   *미상∼1465년(세조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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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자연(子衍). 음직으로 행수(行首)에 보직, 여러 벼슬을 거쳐 판선공감사(判繕工監事-正三品堂上官)에 이르렀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당시에
의금부진무(義禁府鎭撫-正三品堂下官)로서 수양대군(首陽大君)의 지시를 받고 김종서(金宗瑞)의 집에 가서, 김종서와 그 아들 승벽(承璧)을 찾아내어 목을 베었다. 이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 3등에 책정되고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正三品堂上官)에 승진되었다.

이듬해 1454년에
계림군(鷄林君)에 봉하여졌고, 1455년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조선 초기엔 從二品)가 되었다. 시호는 양희(襄僖)이다.

 

판선공감사(判繕工監事) : 조선시대(朝鮮時代) 국가(國家)의 토목영선(土木營繕)을 담당한 기관이다. 관원(官員)으로는 正1명(正三品), 副正1명(從三品), 僉正1명(從四品), 判官1명(從五品), 이외에 하급직(下級職) 약간명이 있다. 판선공감사(判繕工監事)란 선공감(繕工監)의 장(長)을 말한다. 

 

[참고문헌]

*端宗實錄
*世祖實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