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화도 교동을 관향으로 하는 성씨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본토성(土姓)이 셋인데 고(高),인(印),전(田),안(安)등을 들었으며 안씨는 속성(續姓)이라하여 나중에 들어 왔음을 밝히고 있다. 교동지에 의하면 황(창원黃),한(청주韓),전(안동全),권(안동權),방(온양方), 이(전주李)씨등을 대성(大姓)으로 꼽고 있다.
●교동인씨(喬桐 印氏)
교동인씨(印氏)는 중국 진(晉)나라의 서(瑞)가 신라 유례왕때 들어와 아찬(阿)의 벼슬을 하고 그의 후손 빈이 고려 인
종 때 한림학사, 문하시사(門下侍史)를 지내고 교동부원군에 봉해짐으로써 그 자손이 교동으로 관적하게 되었다.
빈이 교동인씨의 시조로 되어왔으나 《교동인씨세보》(1936)에는 빈의 후손 당이 시조(1세)로 되어 있다. 당은 공민왕
때 서북면병마사로서 압록강 서쪽의 파사부(婆娑府)등 삼참(三站)을 공략하고 개척한 공으로 참지정사에 올랐다.
조선시대에 교동인씨 중 유일한 문과급제자는 석보(錫輔)로, 고종 때 경과별시에 급제했으며 문명이 높았다. 1960년
도 국세조사에서는 인구 1만 791명으로 258성씨 중 87위였고, 1985년도 조사에서는 4,280가구로 2,786위였다.
집성촌은 충남당진군,예산군등에 분포하고 있다.
1985년의 국세조사에서는 17,556명이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교동전씨(喬桐 田氏)
전씨(田氏)의 본관은 문헌에 남양, 담양을 비롯하여 159본까지 기록하고 있으나 이중 연원이 가장 오래된 것은 영광전
씨 로서 시조는 고려조 개국공신 전종회〔田宗會〕이다.
다음은 고려때 조산대부, 신호위대장군을 지낸 전총문〔田寵文〕을 시조로 하는 태산전씨 이며,교동전씨는 고려말 정용
산원을 지낸 전성무〔田成茂〕를 시조로 하는데, 그의 딸이 조선개국공신이자 옥천부원군인 유창에게 출가하였다.
●교동뇌씨(喬桐雷氏)
중국에서 계출된 성씨로 전하고 있으나 상계를 고증할 문헌이 없다. 우리나라 뇌씨(雷氏)는 청나라 덕종때 사람으로
형부시랑을 지낸 뇌이성(雷以誠 : 자는 학고)의 후예이며, 선조가 조선조에서 벼슬을 지내다가 화를 입고 교동으로 유
배되어 그 곳에서 살았으나 후손들이 황해도로 이주하였다.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 황해도 수안(遂安)·황주(黃州) 등지에 30여 가구가 있었으며,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에 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은 교동사(1995년: 황규열 저)에 의거, 대성(大姓) 을 소
개해 본다.
●권씨(權氏)
본관이 안동. 동산리와 삼선리에 거주하고 있으며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 휘(諱) 부(阜)의 후손(後孫)인 통정대부(通
政大夫) 처중(處中)이 들어 와 현재 13세가 살고 있다.
●방씨(方氏)
본관이 온양. 동산리에 거주하고 있으며 호(號)가 월봉(月峰)인 휘(諱)치정(致正)이 들어와 살면서 현재 십수세(十數
世)가 살고 있다. 대룡리에도 거주 한다.
●전씨(全氏)
본관이 안동. 봉소리에 거주하고 있으며 시호(諡號)가 충렬공(忠烈公)인 휘(諱)이갑(以甲)의 후손이자 대사헌(大司憲)
을 지낸 휘(諱) 사안(思安)이 조선이 개국하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고자 처음 들어온 이래 현재 20여세가 살고 있
다.
●한씨(韓氏)
본관이 청주 봉소리 거주하고 있으며 시호(諡號)가 문경공(文敬公) 휘(諱) 수(脩)의 후손(後孫)인 도사(都事)를 지낸 휘
(諱) 안국(安國)이 들어와 살면서 현재 18세가 살고 있다. 또 일파는 무학리를 비롯하여 교동 각지에 살고 있다.
●황씨(黃氏)
본관이 창원. 인사리에 거주하고 있으며 회산군(檜山君) 휘(諱) 석기(石奇)의 증손(曾孫)인 군수를 지낸 휘(諱) 의헌(義
軒)이 들어와 살면서 현재 20세가 살고 있다.
또 고구리에 거주하는 일파는 회산군(檜山君) 휘(諱) 치윈(致源)이 들어와 살면서 현재 10세가 살고 있다. 난정리에도
거주하고 있다.
●이씨(李氏)
본관(本貫)이 전주(全州), 봉소리(봉소리)에 거주하고 있으며 효령대군 증손 고양부정(高陽副正) 휘(諱) 인(仁)의 아들
휘(諱) 윤정(允貞)이 어머니 평산(平山) 신씨(申氏)의 품에 안겨 아버지 고양부정(高陽副正)이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왕위찬탈(王位簒奪)에 불만을 품고 신변에 위해를 느끼자 강화 양도면 조산리에 모자를 피신 시키고 자신은 행방을 감
추었다.
휘(諱) 윤정(允貞)은 아들을 둘 두어 맏아들 휘(諱) 경수(敬守)는 조산리에 종현부락에 정착하여 전주이씨의 교동 입향
조(入鄕祖)이니, 지금 교동에 거주하는 전주이씨는 대게 효령대군으로 부터 20대손, 입향조로 부터 15대손이다.
<끝>
이재훈
'■ 보학 > 성씨별관향' 카테고리의 다른 글
4. 주요 성씨별 인구. (0) | 2008.09.17 |
---|---|
3. 성씨별 가구 및 인구수(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 (0) | 2008.09.17 |
전주이씨(全州李氏)의 유례. (0) | 2008.05.25 |
싸이버 종친 카페 찿아가기 (0) | 2008.04.09 |
이씨 인구현황(2000년 기준) (0) | 2008.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