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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州李氏 編

야촌(1) 2007. 10. 18. 00:52

■ 경주이씨 (慶州李氏)

1. 관향(貫鄕)의 유래(由來)
   경주이씨(慶州李氏)의 시조(始祖) 알평(謁平)은 진한육촌장(辰韓六村長)의 의장(議長)으로 알천양산촌장(閼川楊山

   村長) 이며 박혁거세를 신라 초대왕으로 추대하였다. 신라 유리왕 32년에, 이씨(李氏)로 사성(賜姓)받았으며 본관

   (本官)은 시조(始祖)의 발상지(發祥地)인, 양산촌(楊山村)을 오늘날의 경주(慶州)로 하고 한때 지명이 월성(月城)이

   여서, 일명(一名)월성이씨라고도 한다.

2. 이거(移居)와 분파(分派)
   경주이씨(慶州李氏)의  분파(分派)는 평리공파(評理公派), 이암공파(怡庵公派), 익재공파(益齋公派), 호군공파(護

   軍公派), 국당공파(菊堂公派), 부정공파(副正公派), 상서공파(尙書公派), 사인공파(舍人公派), 판전공파(判典公派),

   월성군공파(月城君公派), 시랑공파(侍郞公派) 11개 대파(大派)가 있다.

 

경주이씨(慶州李氏, 월성)
[유래]
시조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은 박혁거세 탄생 설화에 나오는 초기 신라의 6촌 중 알천 양산촌(閼川 楊山村 : 급량부)의 촌장이다. 경주이씨 대동보에 의하면, 이알평은 신라 좌명공신(左命功臣)으로 박혁거세가 왕이된 뒤 아찬(阿粲)에 올라 군사업무를 장악 했으며 기원32년(신라 유리왕 9년)에 이씨로 성을 하사 받았다고 한다.


신라 법흥왕 23년엔 시호(謚號)를 문선공(文宣公)이라 하였고, 무열왕 3년엔 은열왕(恩烈王)으로 추봉되었다.
그러나 그후의 계대를 실계하여 이알평의 36세손인  신라의 소판(蘇判) 벼슬을 지낸 진골(眞骨) 출신, 이거명(李居明)을 중시조로 하여 1세조로 하고 있다.

[가문의번영]
경주이씨는 고려 말에 크게 세력을 떨쳤고 조선에 와서도 문과 급제자 178명, 상신 8명, 대제학 3명을 비롯하여 10여명의 공신과 많은 학자와 명신을 배출했다.


11개 대파 중 상서공파 후손인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집안에서 가장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고, 세칭 8별(鼈) 집으로 불리우는 익재공파와,  이완(李浣) 대장을 낳은 국당공파가 그에 버금간다.


경주이씨가 조선에 배출한 상신·문형 가운데 백사집에서 영의정 4명, 좌의정 2명, 대제학 2명이 나왔고, 8별집에서 좌의정과 대제학 각 1명, 국당공파 중의 정순공(靖順公) 이성중(李誠中) 후손에서 좌의정 1명이 나와 이들 3파가 사실상 경주이씨의 주축을 이루었다.

고려 말의 대학자이며 외교가, 문장가, 정치 가이기도 한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이 고려때의 경주 이씨를 대표한다. 이제현은 충선왕부터 공민왕까지 다섯 임금을 섬기며 4번의 제상을 역임, 여러 방면에 많은 공적을 남기며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했다.


조선시대에는 8형제가 모두 문장에 뛰어나 8문장으로 꼽히는 박팽년의 사위인 이공린(李公麟)의 아들과 임진왜란이 터지자 유성룡을 도와 병참 책임을 맡는 등 큰 활약을 한 이시발(李時發)을 비롯하여, 오성과 한음의 일화로 유명한 오성대감 이항복은 임진왜란 때 5차례나 병조판서를 역임하여 국난을 수습, 전후 정승에 올라 당쟁을 막는데 힘쓴 조선시대 4대 명재상의 한 사람으로 청백리에 올랐다.


근대 인물로는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李始榮)과 재계의 거목이었던 삼성그룹의 이병철회장.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을 역임한 이명박(李明博) 등이 있다.

[계 파]  

경주이씨는 중시조 이거명의 17~21세손에서 크게 14파로 나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크고 작은 70여개 파로 분파된다.

 

- 평리공파(評理公派) : 16세손 이인정(李仁珽)을 파조로 한다.
- 이암공파(怡庵公派) : 17세손 이관(李琯)을 파조로 한다.
- 익재공파(益齋公派) : 17세손 이제현(李齊賢)을 파조로 한다.
- 호군공파(護軍公派) : 17세손 이지정(李之正)을 파조로 한다.
- 국당공파(菊堂公派) : 17세손 이천을 파조로 한다.
- 부정공파(副正公派) : 17세손 이매(李邁)를 파조로 한다.
- 상서공파(尙書公派) : 17세손 이과를 파조로 한다.
- 사인공파(舍人公派) : 17세손 이수(李蓚)를 파조로 한다.
- 판전공파(判典公派) : 15세손 이강을 파조로 한다.
- 월성군파(月城君派) : 21세손 이지수(李之秀)를 파조로 한다.
- 직장공파(直長公派) : 19세손 이양오(李養吾)를 파조로 한다.
- 석탄공파(石灘公派) : 19세손 이존오(李存吾)를 파조로 한다.
- 진사공파(進士公派) : 19세손 이양중(李養中)를 파조로 한다.
- 교감공파(校勘公派) : 19세손 이존사(李存斯)를 파조로 한다.


[집성촌]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망호리. 해안을 낀 이곳 야산 아래 경주이씨가 자리를 잡은 것은 4백여년 전이다.
익재공 이제현(益齋公 李齊賢)의 9대손인 호암공 이반기(湖巖公 李磻琦)가 정미사화(丁未史禍)를 피해 경기도 고양에서 이곳으로 터를 옮겨, 현재 약 100여가구가 있다.

[가문의 문화유산]
익재영정 : 국보 제110 호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고려시대의 문신, 학자 이제현(李齊賢:1287∼1367)이 중국에 머물 때 원나라의 화가 진감여(陳鑑如)가 그린 이 영정은 오늘날 고려시대의 희소한 유품으로 남아 있는데 원나라 때의 화풍을 전하는 중요자료이다.
[족보발간]
갑자보 : 1684년(조선 숙종 10년)
무진보 : 1748년(조선 영조 24년)
갑술보 : 1814년(조선 순조 14년)
계유보 : 1873년(조선 고종 10년)
경인보 : 1890년(조선 고종 27년)
원주보 : 1929년
경주보 : 1930년
대구신미보 : 1931년
대전보 : 1933년
경보보 : 1918년
대전보전보 : 1978년
중앙표준보 : 1988년


[본관지]
경상북도 경주

[기 타]
◇연락처 :  경주이씨 중앙화수회 

               우편번호 110 - 521

               주소 : 서울 특별시 종로구 혜화로 35(명륜동1가 33-90

               Tel : 02-742-6250/1      Fax : 02-766-9975
인구수 :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는 1,424,866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