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박원종 묘역(경기도 기념물 17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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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빈 신씨 묘역을 돌아 나와서 박원종 묘역을 가기 위해서 다시 동네 깊숙한 곳을 들어 갑니다. 조금 가다 보면 좌측에 도심사(陶心祠) 사당이 보이고 뒤편에 묘지가 있어서 혹시나 하고 위에 올라가 보면 묘역은 좋은데 누구의 묘인지 묘비 글씨도 안 보이고... 다시 걸어가다 보면 좌측에 비각이 보이는데, 효자 이인교란 사람의 충효비가 있으며, 조금 더 가면 와부 보건지소 표지판이 보이고 삼거리를 만납니다. 삼거리에서 좌측 도로를 따라서 조금 언덕 길을 오르면 덕소 정수장 표지판이 보이고 충열공 박원종 묘역 180미터란 이정표가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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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종 묘역 입구 전경 | ▲ 박원종 묘역 전경 | ▲ 박휘운(朴諱雲)의 묘 |
묘역으로 들어가는 길목 좌측편에는 묘지군들이 많이 보입니다. 도로에서 200여 미터 들어가면 좌측에 문화재 안내판(위 좌측 사진)이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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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열공 박원종 신도비 |
묘역 입구 우측에는 충열공 박원종의 신도비가 있는데, 이수 부분의 용 조각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맨 앞 쌍분 묘의 기존 묘비는 판독이 어려우나 옆에 새로 세운 묘비를 보면 누구인지는 모르나 박휘운(朴諱雲)의 묘이고, 박휘운의 뒤편에 있는 것이 박원종 묘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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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종 묘역 전경 | ▲ 박원종 묘역 부후묘에서 바라 본 모습 |
박원종의 묘소는 특이하게 부후묘(附後墓)입니다. 언젠가 성남시의 한산이씨 묘역에서 한성군 이질의 부후묘를 처음으로 소개를 했었습니다만, 조만간 부후묘 한 번 더 나갑니다. 박원종 묘역에는 좌우로는 망주석과 문인석 한 쌍씩 서 있습니다만, 문인석이 크고 망주석은 다른 묘역에 비해서 두툼하고 조각된 부분이 멋있습니다. 봉분 앞에는 묘비와 상석, 향로석이 놓여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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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주석과 문인석 | ▲ 망주석 조각 부분 | ▲ 박원종 묘역 후경 |
조선 초기의 무신이며 반정공신인 박원종(朴元宗,
1467∼1510) 묘소이다. 박원종은 적개좌리공신
박중선의 아들로 태어나 음보로 선전관이 된 후 조선 성종 17년(1486) 무과에 급제하면서 성종의 특별한 관심을 받았다.
1492년 성종의 특지로 승정원 동부승지에 발탁되자 사헌부에서 연소하고 무과출신자에게 동반의 3품직을 내리는 것은 불가하다고
이의를 제기하면서 서경을 보류하자, 성종이 공조참의로 발령을 냈다.
이에 또다시 사헌부가 반대하자 병조참지로 임명하였다. 그 뒤 연산군이
즉위하여 특명으로 동부승지·우승지·좌승지를 지내면서 재정의 긴축문제 등 시무책을 건의해 실시되기도 하였다. 주로 재정을 담당하던 중 왕실의
사치를 비판하는 간언 등으로 점차 연산군의 미움을 받아 연산군 6년(1500)에 평안도 병마절도사로 좌천된 후 다시 복직하여 여러 관직을 거친
후 1506년 경기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삭직되었다. |
박원종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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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1리 산31 아래의 빨간 깃발이 신빈 신씨 묘역이고 위의 빨간 깃발이 박원종 묘역입니다. 박원종 묘는 신빈 신씨 묘역에서 2Km 남짓한 거리에 있습니다. 시골길을 구비구비 가다 보면 삼거리가 나오고, 삼거리에서 좌측 도로를 따라서 조금 언덕 길을 오르면 덕소 정수장 표지판과 충열공 박원종 묘역 180미터란 이정표가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