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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확선생 묘

야촌(1) 2007. 1. 28. 23:09

한확선생 신도비(경기도 유형문화재 127호)                           written by www.touralone.com

한확선생 묘와 정약용선생 묘는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함께 가 보시면 됩니다. 양평가는 구 도로를 따라가 다 보면 능내역이 나옵니다. 능내역 50여 미터 못미쳐서 길 좌측을 보면 묘역이 길거리에서도 잘 보입니다.

 ▲ 비각과 신도비 전경

묘역 입구에는 신도비가 서 있는데 신도비는 붉은 나무 창살이 둘러진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비각에는 쪽문이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서 볼 수 있습니다. 신도비는 넓은 받침돌을 두루고 그 중앙에 놓여 있습니다.

신도비 앞에는 몇 백년은 됨직한 향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으며, 한확선생 묘은 사초지 위에 있으며, 묘역은 소나무로 둘러져 있습니다.

 ▲ 비각 주변 전경  ▲ 비각 앞에서 올려 다 본 묘역 전경

묘역 좌우로는 문인석과 망주석이 한 쌍씩 서 있으며, 중앙에는 장명등이 서 있습니다. 장명등은 화사석 아래 부분의 가운데 받침돌과 아래 받침돌이 없다보니 조금은 불안정해 보이며, 망주석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봉분 앞에는 묘비와 상석 그리고 향로석이 나란히 놓여 있으며, 묘비는 글씨가 거의 보이질 않아서 우측에 새로 묘비를 세워 놓았습니다.

 ▲ 한확선생 묘역 전경

이 묘역에는 한학 선생만 묻혀있고, 부인인 남양부부인은 다른 곳에 묻혀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따로 묘를 썼는지는 어느 기록을 봐도 없네요. 그래서 다음 편에 한확선생 부인의 묘를 소개합니다.

어떤 자료를 보니 "한확 선생이 명나라 사신으로 다녀오는 길에 사하촌에서 객사하자, 왕이 원래 왕릉 자리로 잡아놓았던 현재의 묘역을 그의 묘 자리로 주었다"라고 하는데 현재의 묘역이 그 자리인지...

한확(1403∼1456)은 인수대비의 아버지로, 성종의 외할아버지가 되며, 그의 누이는 명나라 성조의 비, 누이동생은 명나라 선종의 후궁이다. 그 힘으로 세종 2년(1420) 명나라에 가서 금·은의 공물 면제를 허락받고 돌아왔으며, 세조 2년(1456)에는 사은사로 중국 연경에 가서 세조의 왕위의 정당성을 명나라에 설득하였고, 귀국하는 길에 사하포(沙何浦)에서 숨졌다.

비는 2층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용을 조각한 머릿돌을 얹었다. 받침돌의 옆면에는 2단으로 안상(眼象)을 새기고 윗면에는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비문에는 명나라에 사신으로 왕래하면서 국교를 원활하게 한 그의 공로가 적혀 있으며, 이어 3남 6녀의 자녀와 인수대비의 소생인 성종, 월산대군, 명숙공주 등의 이름이 적혀 있다.

어세겸이 비문을 짓고, 임사홍이 글씨를 썼는데 부드러운 송설체이다. 인수대비가 부친의 묘에 비가 없음을 슬퍼하자 성종이 명하여, 이듬해인 연산군 원년(1495)에 이 비를 세웠다.

한확선생 묘역 위치도

소재지 :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위의 빨간 깃발이 한확선생 묘역이고,

아래의 빨간 깃발이 정약용선생 묘입니다.

한확선생 묘는 양평가는 구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능내역이 나옵니다.

능내역 50여 미터 못미쳐서 길 좌측으로 묘역이 보입니다.

대중교통은...
청량리역 앞에서 일반버스 8번이나 좌석버스 166번을 타고 능내역 앞에서 하차.
출처 : 나홀로 테마 여행
글쓴이 : 광나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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