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한국의전통문화

퇴계 15대 종손 이동은 옹 별세.

야촌(1) 2009. 12. 28. 19:00

퇴계 15대 종손 이동은(李東恩)옹 별세.

 

↑100壽 때의 모습

 

퇴계 이황의 15대 종손인 이동은(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옹이 2009년 12월 23일 낮 1시30분께 노환으로 별세했다.

 

수(壽) 101歲. 1909년 안동에서 태어난 고인은 대구에서 중학교를 다닌 1년 남짓한 세월을 빼고 줄곧 종택을 지키면서 퇴계 집안의 기둥 노릇을 해왔다. 고인은 한학에 능해 한시를 짓고 손님들에게 선현들의 좋은 글귀를 적어 주는 등 왕성한 활동을 했으나 3년여 전에 전립선 수술을 받은 뒤부터 기력이 약해져 폐렴 등을 앓아 왔다.

 

유족으로는 맏아들 근필(77세 16대 종손)씨와 손자 치억(34세 17대 종손)씨, 증손자 이석(2세. 18대 종손)군, 사위 이용태(76· 전 삼보컴퓨터 회장)씨 등이 있다.

 

 

 

 

 

 

 

 

 

 

 

 

 

 

 

 

 

장례는 27일 오전 9시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도산서원 뒤편 퇴계종택에서. 23일 101세로 별세한 퇴계 이황 선생의 15대 종손 이동은 옹의 발인제를 앞둔 상가의 담장은 조화에서 뗀 이름표가 나란히 내걸렸다.

종택 입구부터 조문객과 전통 유교식 장례문화를 취재하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나이 들수록 더욱 정정하더니 이제 떠나셨으니 못다한 정을 가눌 길 없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해, 고인의 인품을 기리고 헤어짐의 아쉬움을 적은 만장 40여 개가 진열돼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장·국무총리 등이 보낸 조화도 보였다. 빈소에서는 굴건제복을 한 78세의 맏상주 근필씨가 문상객들에게 깍듯이 맞절을 했다.

 

오전 10시 종택 마당에서 발인제가 시작됐다. 고인의 관은 조문객을 맞은 안동의료원에서 전날 옮겨져 마당 한쪽 땅속에 반쯤 묻힌 채 하룻밤을 보냈다. 상주들의 애끓는 호곡 속에 운구된 관이 상여에 올려졌다. 기온은 영하 9도. 고령의 상주들이 감당하기엔 매서운 추위였지만 어김없이 마당에서 잔을 드리고 큰절을 했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앞소리꾼의 소리를 시작으로 상여는 장지로 떠날 채비를 했다.

붉은색 명정(고인의 성씨를 적은 깃발)이 앞장서고 영정과 요여(혼백을 넣은 작은 가마), 만장이 뒤를 이었다.

만장 뒤로 16명의 상두꾼이 멘 상여가 앞소리꾼의 선창에 구슬픈 소리로 화답하며 종택을 나섰다.

 

장례는 전체적으로 간소했다. 유림장 이야기도 나왔지만 집안 어른들과 상주는 가족장을 선택했다.

5일장에 16인 상여 등 간소한 장례는이 집안의 가풍이라는 것. 상여도 현대식 금속 골조였다.

유림이 모두 지켜보는 퇴계종택이지만 의례는 세태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상여 행렬은 종택에서 1㎞쯤 떨어진 퇴계 선생 묘소 아래 갈래길에서 잠깐 쉬어갔다.

상주들은 상여에 저승 노자를 꽂았고 상두꾼은 막걸리를 마시며 추위를 달랬다.

 

종택을 떠난 상여는 1시간 뒤 선산인 건지산 중턱에 닿았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퇴계 선생의 묘소200m쯤 떨어진, 고인의 부모 묘소 아래다.

그곳에는 10여 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고인의 부인이 잠들어 있다.

 

지관은 “쥐띠는 오늘 하관 모습을 피해 달라”고 요청했다.

고인은 문중과 유림 등 수백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인 왼쪽에 나란히 묻혔다.

절차와 기물은 간소했지만 상주들의 호곡은 절절하고 추위에도 흐트러짐이 없어 절로 정성이 느껴지는 유가의 장례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