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근대인물

이병철(李秉喆)

야촌(1) 2010. 7. 15. 12:58

 

■ 이병철(李秉喆)

    ◇생졸년 : 1910년∼1987년. /壽77歲

    ◇세계도 : 경주이씨 판전공파

 

  실업가. 본관은 경주(慶州). 호(號)는 호암(湖巖).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中橋里) 723번지의 장내마을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벼 1천석의 대지주인 선비 이홍석(李洪錫)이고, 아버지 찬우(纘雨, 1884∼1957)와 어머니 권재림(權在林)의 2남 2녀 중 막내이다.

  1922년 지수보통학교 3학년에 입학, 같은해 9월 서울 수송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학하였다. 중동학교 속성과 1학년에 입학, 중학부에 들어갔다. 1929년 박두을(朴杜乙)과 혼인하였다.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전문부 정경학과에 입학하여 수학중 심한 각기병으로 귀국하게 되어 학업을 중단하였다. 사업에 뜻을 두고 아버지로부터 300석 추수의 토지를 분재 받았다.

  1936년 첫 사업으로 정현용(鄭鉉庸)· 박정원(朴正源)과 동업으로 마산에서 협동정미소를 운영하였다. 같은 해 6월 일본인 경영의 히노데자동차회사(日出自動車會社)를 인수하였으며, 또한 토지에 투자하여 200만평의 대지주로 등장하였으나 실패하고, 협동정미소와 히노데자동차회사를 매각, 부채를 청산하였다.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三星商會)를 설립, 1941년 주식회사로 개편, 청과류와 어물 등을 중국에 수출하였다. 1942년 조선양조를 인수하였고, 1947년 상경하여 1948년 삼성물산공사(三星物産公司)를 창설, 무역업에 착수하였다.

  1950년 일본경제시찰단원으로 업계를 시찰하였고, 6·25 때 부산에서 삼성물산주식회사를 설립, 운영하였으며, 환도 후 본격적으로 사업에 착수하였다.

  1953년부터 상업 자본에서 탈피하여 제조업에 투자함으로써 산업 자본화하였다. 같은해 제일제당주식회사를 설립하기 시작하여, 1954년 제일모직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그 뒤 동방생명·신세계백화점·안국화재보험·전주제지·성균관대학교 등을 인수, 경영하였고, 중앙개발·고려병원·한국비료·삼성전자·제일합섬·삼성중공업·동양방송· 중앙일보사 등을 창설, 운영하였으며, 삼성문화재단·삼성 사회복지재단 등을 설립하여 이사장에 취임하는 등 많은 회사를 설립, 인수 또는 합병하여 재벌기업을 형성하였다.

  또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인 전국경제인협회를 창설하여 초대회장에 취임하였으며, 울산공업단지를 조성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198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참고자료]

◇湖巖自傳(李秉喆, 中央日報社, 1986)
◇三星50年史(三星秘書室, 1989)
◇財閥의 形成과 企業家活動(金柄夏, 한국능률협회, 1991)
◇湖巖 李秉喆의 生涯와 經營理念(金柄夏, 經營史學 3, 1988)
◇韓國企業經營의 歷史的 性格(黃明水, 湖巖李秉喆의 企業活動,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