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근대인물

애산 이인(愛山 李仁)

야촌(1) 2011. 9. 7. 20:03

■ 애산 이인(愛山 李仁)    

 

□출생 : 1896년 10월 26일(음력 9월 20일) 경상북도 달성군 사일동

□사망 : 1979년 4월 5일 16 : 15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 산28번지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

□별칭 : 자 : 자옥(子玉)

□호 : 애산(愛山).

□학력 : 일본 메이지대학교 법학부 졸업(법학박사

□직업 : 독립운동가, 정치인, 법률가.

□종교 : 유교.

□배우자 : 고경희(高慶熙)

□자녀 : 6남 2녀, 장남 이옥(李鈺)

□부모 : 아버지 학포 이종영(學圃 李宗榮), 어머니 정복희

□조부 : 만당 이관준(晩堂 李寬俊)

□삼촌 : 우재 이시영(又齋 李始榮)

□세계 : 경주이씨 익재공 후 판윤공 이지대 14대손(譜名 : 圭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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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변호사·정치가. 광복 후 검찰총장, 초대 법무부 장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유엔인권옹호한국연맹 이사를 지냈고, 5·16 후, 야당 원로로 야당통합을 위해 노력했다. 전재산을 한글학회에 기증했다. 

 

호 애산(愛山). 대구(大邱) 출생. 1917년 일본 세이소쿠[正則]중학을 나와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학부를 졸업한 후, 대학원 과정인 니혼대학[日本大學] 고등전공과(高等專攻科)에서 수학하였다. 1923년 변호사시험에 합격, 변호사를 개업하고 많은 애국인사들을 법정에서 변호하였으며, 1927년 조선변호사협회장에 선임되었다. 1932년 조선발명학회장에 추대되고 조선과학협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사건으로 4년간 복역 후 1945년 8 ·15광복과 더불어 대법관이 되어 대법원장 직무대리를 역임하고 1946년 검찰총장이 되었다. 1948년 정부수립 때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되어 많은 일을 하였으나 대통령 이승만과 불목(不睦), 퇴임하고 그 해 제헌국회의원(制憲國會議員)에 당선되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54년 제3대 민의원에 당선되고 1960년 참의원(參議員)에 당선되었다. 1962년 유엔인권옹호한국연맹 이사에 선임되어 활동하고, 1972년 민족통일촉진회장 ·통일원 고문 등을 역임하였으며, 5·16군사정변 후에는 야당 원로로서 야당통합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 유언을 통하여 집을 포함한 전 재산을 한글학회에 기증, 오늘의 한글회관을 건립하는 데 밑거름이 되게 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1969년 무궁화 국민훈장이 수여되었다.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저서에 《법률과 경제》 《애산여적(愛山餘滴)》 《반세기의 증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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