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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열 처 경주이씨 효열각(庾秉烈妻慶州李氏孝烈閭)

야촌(1) 2021. 6. 10. 08:46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ㅣ 승인 2004.07.16 00:00

 

충북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는 하루에 버스가 세 번밖에 안들어갈 정도로 외진 곳이다. 자연마을로는 되재, 농막, 황촌, 소야 등이 있는데 옛부터 충절과 효열의 고장으로 이름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중봉 묘소와 신도비가 도농리 되재에 있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으며, 되재마을 입구에는 전주이씨 효열비가 있어 뭇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유병열(庾秉烈)의 처 경주이씨(慶州李氏) 효열비각은 이러한 마을을 지나 가장 안쪽인 소야마을 어귀에 있는 비각이다.

지금이야 '도덕성 회복'이다 '충효교실' 특강이다 하여 사회의 메마름에 따른 특별정신운동이 많이 강조되고 있지만 옛날이야 유교전통의 사회가 개인적이며 이기적인 모습들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효열(孝烈)의 예가 많았다고 본다면 억지일까.

아무튼 소야마을 도로 옆에 위치해있는 경주이씨 효열비각은 유병열의 처 경주이씨의 효행이 지극하자 1945년 이씨의 효열을 후손들에게 길이 전해주기 위해서 무송유씨(茂松庾氏) 문중에서 세운 것이다.

길 옆에 비를 세우고 그 둘레를 목조다포집으로 두평 반 가량의 비각을 세웠는데 마을사람들의 논 한 옆으로 잘 다듬어진 잔디와 파랗게 칠해진 숫막새기와가 손길이 간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씨는 18세에 유병열에게 시집을 와 시부모와 남편을 받들기를 남다르게 했다 하니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서나마 술을 좋아하는 시아버지를 생각해 항상 술과 고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준비해서 대접했으며 친구들까지도 얼굴 한 번 찡그리는 법없이 대접해 노인들이 부담없이 놀 수 있었다 한다.

슬하에 5남 1녀를 두어 재산까지 많이 모으고 부유하게 살던 중 칠순의 시어머니가 병에 걸려 눕자 온갖 정성을 다해 완쾌시켜 94세까지 장수를 누리게 했다.  아직도 마을에는 직계자손으로 유동형씨가 생존해 있는데 경주이씨는 유씨의 증조모로 집안에 내려오는 얘기를 자세히 들려준다. 비문에는 '庾秉烈妻慶州李氏孝烈閭'라 적혀 있다.

출처 : 옥천신문(http://www.okinews.com